[이치구 전문기자의 '중소기업 경영전략'] '총알탄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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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비스코리아의 사무실에서 책상에 놓인 이상한 플라스틱병을 발견했다.
"이게 뭡니까"라고 이 회사 양진석 사장에게 물었다.
그는 살충제라고 대답했다.
다음 순간 양 사장은 살충제의 병마개를 따더니 후룩 마셨다.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진 기자에게 그는 진지한 자세로 "이거 인체에 무해한 살충제입니다"라고 했다.
아무리 인체에 무해하다지만 살충제를 그냥 마시다니.
오스트리아에서 화학박사를 딴 그는 자신이 개발한 살충제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사실을 이런 식으로 입증해 보였다.
무모하리 만큼 체험적인 방식으로 사태를 풀어가는 그의 전략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연초 그는 자신의 와이셔츠 단추를 풀더니 가슴에 세줄로 그어진 화상자국을 보여줬다.
어떻게 거기에 화상을 입었느냐고 묻자 그는 자기 스스로 석쇠로 화상을 입혔다고 말했다.
왜 자해를 했느냐고 거듭 묻자 새로 개발한 화상치료제를 직접 자기 몸으로 임상실험해보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양 사장처럼 저돌적으로 행동하는 기업인을 두고 "총알 탄 사나이"라고 부른다.
자칫 돈키호테처럼 무모한 듯 보이지만 결국 국가를 위해 큰 일을 해내는 "총알 탄 사나이"란 영화 주인공을 연상해서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사실 맨손으로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겐 "총알 탄 사나이"처럼 현장으로 돌진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연세대 음대를 다니던 양 사장은 가족과 함께 오스트리아 빈으로 음악공부를 하러 떠났다가 빈털터리가 되는 바람에 거리에서 굶어죽을 고비를 겪었다.
갖가지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다 화학공장 생산직으로 취업한 것이 인생의 진로를 바꿨다.
그는 화학공부를 책으로 배우기보다 생산라인에서 몸소 익혔다.
때문에 그는 "현장주의자"가 된 것이다.
프랑스 파리에 화장품을 생산,로뎀화장품이란 브랜드로 국내에서 CJ쇼핑을 통해 판매하면서 그는 기업인으로 자리를 굳혔다.
그러나 양사장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적포도 껍질을 활용한 바이오비료와 화상치료제를 개발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그는 프랑스에서 "심한 피부병에 걸렸을 때 포도찌꺼기를 덮어쓰고 자면 낫는다"는 속담을 듣고 이의 효과를 증명해보기 위해 포도찌꺼기를 덮어쓰고 잠을 자봤다.
결국 5년간 포도껍데기에 묻혀 산 그는 이를 발효시켜 가공한 신물질이 성장촉진과 피부생성에 큰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바이오비료와 화상치료제를 개발해냈다.
이를 개발해내긴 했지만 생산할 공장을 지을 부지와 건설비를 장만할 길이 없자 그는 전국에 있는 초.중.고 폐교를 공장으로 활용하면 좋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는 또 다시 총알탄 사나이가 됐다.
행자부 지자체 교육부 등 관계기관을 발닳도록 찾아다니며 설득을 벌인 끝에 경남 사천에 있는 폐교에 대지 2만2천7백평방m 건평 2천66평방m 규모의 바이오비료공장을 지난 9월 26일 완공했다.
요즘 양 사장은 서울본사 파리현지법인 빈지사 사천공장 등 4곳을 총알처럼 바삐 다니는 중이다.
업계에서 양 사장 보다 더 돈키호테같은 기업인은 이국노 회장이다.
플라스틱 파이프 생산업체인 지주와 사이몬의 대표이사이자 한국플라스틱리사이클링협회 회장인 그는 지난 20년간 갖가지 기행을 남겼다.
거의 맨손으로 창업한 그는 서울 왕십리에서 3명의 종업원으로 플라스틱 파이프공장 차렸다.
그러나 이를 판매할 방법이 아득했다.
그는 제품을 팔기 위해선 고객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확실히 심어줘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충북 진천에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촌놈"인 그는 "촌놈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흰색 한복에 짚신을 신고 전국의 플라스틱부품 대리점들을 찾아나서기로 했다.
시골 형수에게 부탁해 흰색 한복을 맞춰입고 짚신 수백켤레를 마련했다.
그가 짚신에 한복차림으로 소켓 엘보 등 플라스틱 부품을 짊어진채 열차를 타면 사람들이 이상한 얼굴로 쳐다봤다.
처음 대구 칠성시장에 있는 대리점을 찾았을 때 그 점포의 사장은 그를 정신이 좀 이상한 사람으로 보고 말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부품을 내려놓고 좀 쉬어가자고 얘기하자 그건 응해줬다.
하지만 이곳에서 그는 두시간만에 한달간 꼬박 공장을 돌려야 할 만큼의 플라스틱부품을 주문받았다.
이 회장은 "요즘 인터넷 시대여서 대부분의 중소기업인들이 땀흘리며 발로 뛰어다닐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는데 이는 엄청난 오산"이라고 지적한다.
기업인은 발로 뛰지 않으면 언젠가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고 경고한다.
모든 돌부리가 인터넷엔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짚신이 수천켤레나 닳아 없어졌다는 이 회장은 중소기업으로 계속 성장할 수 있는 3대전략을 이렇게 요약 한다.
첫째 나를 팔아라.
둘째 발로 벌어라.
세째 상대에게 이익을 줘라.
일본에 금고공장을 방문했다가 공장을 보여주지 않자 화장실을 다녀온다며 화장실통풍기를 뜯고 생산현장을 몰래 들어가보고 온 선일금고의 김용호 사장,원주공장과 부산공장을 왕복하느라 승용차타이어가 항상 흰먼지에 뒤덮인 남양금속의 홍태식 사장도 현장주의자다.
디지털비디오레코더(DVR)수출을 위해 올랜도 워싱턴 뉴욕 등을 바쁘게 뛰어다니는 박좌규 네오시스트 사장과 중국 상하이 지하철 건설현장 곳곳을 누비는 네듀먼트의 김경오 사장도 현장주의 전략을 펴는 탄탄한 중소기업인이다.
r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