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테크노 파워] "기술경영 모르면 미래도 없다"

글로벌 경쟁시대를 맞으면서 테크노 파워들이 뜨고 있다. 국가경영에서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들의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중국이 급부상하고 있는 이유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유능한 테크노크라트다. 장쩌민 주석, 리펑 전국인민대표대회 위원장, 후진타오 부주석 등 지도자들은 대표적인 테크노크라트 출신이다. 국가경영에서뿐만이 아니다. 기업경영에서도 테크노 경영자들이 급부상하고 있다. 기술과 경영 능력을 함께 갖춘 테크노 CEO(최고경영자)들이 기업의 성공을 결정짓는 핵심요소로 떠올랐다. 한때 'CEO 주가'라는 표현이 유행하기도 했다. CEO가 주가를 결정짓는다는 의미였다. 이제는 CEO가 회사의 운명을 좌우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 기술이 강조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가가 기술로 흥하고 망한다'는 '테크노 헤게모니(Techno Hegemony)'론을 굳이 들먹일 필요가 없다. 야쿠시지 타이조 등 수많은 학자들이 오래 전부터 이를 주장해 왔다. 실제로 기술경쟁에서 앞서는 나라들이 세계를 지배해 왔다. 지금도 그러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이 가라앉고 중국이 뜨는 것이 바로 그 대표적 사례다. 이제는 테크노 파워가 기업경영에까지도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원인으로는 기술과 경영이 접목되는 기술경영시대의 개막을 꼽을 수 있다. 정보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서비스부문이 기술집약화하면서 과학기술 영역이 급속 확대되고 있다. 정보와 지식이 결합된 지식기반사회에서 기술은 성패를 가름하는 변수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젠 과학기술을 모르고는 경영을 할 수 없는 시대를 맞고 있다. 테크노 CEO에 따라 회사가 초일류로 변신한 국내외 사례들은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다. 기술경영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코닝은 우수한 테크노 CEO를 앞세워 '굴뚝기업'에서 '첨단통신기업'으로 탈바꿈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코닝은 브라운관용 유리벌브와 식기용 세라믹그릇 등을 생산, '유리공장'으로 통해 왔다. 그러나 미국 럿거스대에서 세라믹을 전공한 테크노 CEO인 로저 애커맨 회장이 지난 1996년 취임하면서 급변하기 시작했다. 애커맨 회장은 연구개발비를 크게 늘리고 관련인력의 60%를 통신분야에 투입했다. 그 결과 신제품의 매출비중이 2000년엔 84%에 이르렀고 매출액중 통신부문의 비중도 72%로 증가했다. 광케이블과 광섬유, LCD용 첨단기판유리, 광증폭기 등을 생산하는 첨단제품 회사로 된 것이다. 핀란드의 노키아가 펄프 고무생산업체에서 정보통신업체로 변신하는 데도 테크노 CEO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헬싱키기술대 공학석사인 올릴라 회장은 92년 CEO에 취임하면서 연구개발에 온힘을 쏟기 시작했다. 제품개발과 대량생산을 통한 원가절감을 바탕으로 정보통신분야의 세계적 기업을 일궈 냈다. 닛산자동차의 카를로스 곤 사장은 빈사상태에 빠진 기업을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회생시키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그는 프랑스 최고의 이공계대학인 '에콜폴리테크니크' 출신으로 '기업회생의 마술사'로 통한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에는 간판격인 윤종용 부회장을 비롯 테크노 CEO가 6명이나 있다. 기술과 경영을 접목시킨 기술경영으로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한 것이다. LG석유화학에도 화학계열회사들을 총괄하는 성재갑 회장을 비롯 3명의 테크노 CEO가 있다. 고속성장하는 기업엔 반드시 뛰어난 테크노 CEO가 있다. 테크노 CEO를 보면 그 회사의 미래를 점칠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 IRI(Industrial Research Institute) 조사 결과 미국 기업의 45%, 유럽 기업의 49%가 테크노 CEO 체제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손욱 삼성종합기술원장은 "기술부문의 역할이 과거 연구개발수준을 넘어 연구와 사업발전(R&BD)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며 "테크노 CEO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테크노 파워가 산업계를 주도하는 시대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최승욱 기자 s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