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터닝포인트] 이준협 <삼성광전 대표>..직원들 헌신 못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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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비메모리 반도체 유통업체인 삼성광전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지난 91년 대학(연세대 경영학과)을 졸업한 직후다.
유학을 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삼성광전에 입사하라는 부친(이원술 삼성광전 대표)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어차피 경영을 이어갈 생각이라면 사내에서 부딪히며 배우는 게 낫다는 말씀이셨다.
영업을 맡아 뛰어다닌지 2년.
거래처 대표들과 친분을 형성하고 직장 상사들로부터도 인정을 받을 때쯤 뜻하지 않은 위기가 닥쳤다.
부친께서 암으로 갑자기 작고하신 것.
내가 불과 27세의 나이로 삼성광전의 대표 자리에 취임하자 주변에서는 회의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각 기업의 최고위급 구매담당자를 상대해야 하는 업체 특성상 20대 사장이 신뢰를 심어주기에는 부족하지 않겠느냐는 우려에서였다.
스스로도 겁이 났다.
선친이 그동안 쌓아온 국내 최대 비메모리 반도체 유통업체의 위상이 자칫 흔들릴 수 있다는 걱정이 생겼다.
메모리 분야에 대한 신규 사업이 실패한 직후라 사내에 위기감도 감돌았다.
정작 내게 힘을 실어준 사람들은 내가 상사로 모시던 직원들이었다.
어수선한 상황이 오히려 직원들의 힘을 하나로 뭉치게 해줬다.
늦은밤 회사 근처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저희가 손과 발이 돼서 열심히 뛰겠습니다.
국내 최고의 회사로 만들어 봅시다"라는 직원들의 다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 생각해도 당시 1백50억원의 매출을 올렸던 삼성광전이 매출 2천억원대를 바라보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데는 직원들의 노고가 가장 컸다.
결과적으로 당시 유학이나 다른 직장을 택하지 않고 삼성광전에 바로 입사한 것은 좋은 선택이 됐다.
2년동안 부대껴온 직원들과 업무를 통해 알게된 지인들은 유학을 통한 깊은 지식보다 소중한 자산이 됐다.
세진컴퓨터 납품사업은 직원들과의 합심으로 매출을 올린 대표적인 케이스.
납품계약을 앞두고 당시 주거래은행 지점장과 거래처 관계자들이 "세진컴퓨터 납품은 리스크가 크다"고 만류했지만 여러가지 고려끝에 납품을 강행했다.
직원들도 이런 나의 결정에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결국 성공적인 결과를 안겨줬다.
취임이후 다분히 공격적인 마케팅을 이어갔다.
우선 메모리 분야에 대한 신규투자를 재개했다.
메모리 반도체는 그 당시 투기성이 높은 상품이라는 이유로 유통업체들이 꺼리던 때였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커지고 있는 시장을 외면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삼성전자 등 소자생산업체를 설득해 본격적인 마케팅에 나섰고 1~2년만에 메모리분야에서 탄탄한 시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신규 분야 투자는 계속 강화해나갈 계획이다.
최근들어서는 LCD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메모리 분야보다 수익성이 두배 이상 높은데다 활용 분야도 폭넓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칩셋개발분야 진출을 노리고 있다.
사내에 R&D조직을 신설하고 디자인하우스 등과의 협력방식을 통해 독자적인 칩셋을 개발할 방침이다.
해외시장도 뚫고 있다.
수요층을 이루는 PC,LCD업체들이 해외로 나가고 있어서 해외지사의 설립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현재 수출은 미미한 상태지만 앞으로 홍콩과 선전 등 중국시장을 중심으로 매출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지난해 올린 매출은 1천1백38억원.올해는 1천6백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잡았다.
보수적으로 잡은 수치라 내심 목표치를 웃돌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