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차이나 임팩트] 제2부 : (5) '그들의 속도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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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수교 이후 10년간 중국으로 달려간 국내 기업들중 상당수가 다시 보따리를 싸야 했다.
중국에 들인 '수업료'가 50억달러 이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1978년 개혁.개방을 시작으로 자본주의 경제를 향해 질주하고 있는 '뉴차이나'의 속도에 맞추지 못하고 과거의 역사인식으로 중국에 접근한 탓에 수많은 오류가 발생한 것이다.
10년간의 시행착오만으로 충분하며, 뉴차이나 그들의 속도에 맞는 새로운 중국 진출 전략을 찾아야 할 때가 됐다.
실패사례를 분석하면 그 해답이 있다.
섬유산업을 하는 A사 사장은 중국 진출을 위해 현지를 방문했다.
첫번째 방문지는 산둥성 인근의 핑두시.
핑두시의 시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총 출동해 그를 맞았다.
그 자리에서 시장은 A사장을 '따거(형님)'라며 술잔을 돌렸다.
A사장은 이런 대우에 그만 다른 지역에 대한 탐방을 그만 두고 그 자리에 눌러 앉았다.
이 회사는 2백30만달러를 톡톡 털어넣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중국 정부의 환대에 넘어가 시장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대표적인 사례다.
이는 중국 공무원들이 인센티브와 연계된 외자유치 실적을 올리기 위해 뛰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결과였다.
이같은 사례는 더 있다.
산둥성 칭다오에 위치한 청우CNC 신식기술유한공사의 정태영 사장.
그는 지난 2000년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으로 중국 시장에 뛰어들 때만 해도 장밋빛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시장 조사를 위해 처음 칭다오에 왔을 때였어요. 시장이 직접 식사 대접까지하며 왕 모시듯 하더라고요. 사업이 저절로 잘 풀릴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ERP 시스템은 중국 시장에선 아직 생소한 탓인지 사업이 진척되지 않았다.
게다가 동업자가 회사자금을 갖고 잠적하는 바람에 빚더미에 앉게 됐다.
13억 거대시장에 대한 환상에 젖다 어려움을 겪은 사례는 부지기수다.
국내 최고 바이러스 백신업체로 꼽히는 안철수연구소.
지난 2000년부터 베이징에 연락사무소를 두고 시장확장에 나섰으나 지지부진했다.
최근 안 사장은 "중국 연락사무소는 현지 직원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정도 밖에 기대하지 않는다"며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불법 복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중국에서 솔루션을 판다는게 무리였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중국에서는 현지 자금조달이 쉽지 않다는 현실을 몰라 실패한 사례도 있다.
한글과 컴퓨터는 지난 2000년 중국업체와 합작법인을 설립, PC방 사업을 해왔으나 최근 중국에서 사실상 철수했다.
PC방 사업의 속성상 거액의 자금이 필요한데도 이 방안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합작파트너가 직접 담보를 제공하거나 세계 1백대 금융회사의 보증서가 아니면 은행대출이 쉽지 않다는 중국의 금융환경을 이해하지 못했던 셈이다.
관시(關係)보다 계약을 중시하는 문화가 생겨나고 있는 것도 뉴차이나의 현실이다.
낭패를 보지 않으려면 계약서를 꼼꼼히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산둥성에 골프장을 만들기로 한 한 기업인은 5백만달러를 투자하기로 하고 1년여간 공을 들인 끝에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계약서가 문제였다.
조선족이 통역을 맡았는데 골프라는 개념이 생소한 탓에 '旅遊(여행유람)'라는 문구만 집어넣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골프장을 건립할 수 없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중국 사업에 실패한 국내 기업인들은 흔히 "중국인에게 사기당하지 않았나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그들의 속도에 맞추지 못해 스스로 실패를 자초했다는 표현이 맞다는 지적이다.
"오너가 직접 뛰는 기업은 성공한다. 하지만 왕노릇만 하고 가끔 찾는 오너는 성공의 기회를 잡지 못한다"는 하나은행 정성재 상하이 지점장의 지적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베이징.상하이=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