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구 전문기자의 '중소기업 경영전략'] '개마고원' 확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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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서스테크놀러지의 오종훈 대표는 서울대 물리학과 77학번이다.
그는 KAIST에서 응용물리학 석사와 박사를 받았다.
현재 포항공대 교수인 그는 영국 에든버러대학 연구원,루슨트테크놀러지 벨연구소 연구원,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 등을 거쳤다.
이렇게 응용물리학분야에서 엘리트 코스만을 거친 그가 중소기업 사장이 되기로 마음먹은 것은 대학시절부터 관심을 가져온 오디오 취미 때문이었다.
그는 대학시절 교내 합창반에 들어가면서부터 소리 파장의 신비로움에 몰두했다.
결국 오디오매니아가 된 그는 오디오와 물리학을 접목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나섰다.
하이텔의 하이파이동호회를 통해 오디오매니아들과 만난 그는 회원들과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완전 디지털 앰프를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만들어내게 됐다.
여기에 자신을 얻은 그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99년 4월 팔서스를 창업했다.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첨단기술을 가진 중소기업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아직까진 선진국에서도 디지털 사운드를 아날로그로 바꾸지 않고선 증폭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
아날로그로 바꾸어 증폭을 하면 음질이 나빠지는 등 여러가지 불편함이 있는데도 이 기술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 대표가 디지털 사운드를 아날로그로 바꾸지 않고 디지털신호를 그대로 증폭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세계에서 최초로 이 칩(DDC)을 양산하는 체제도 갖췄다.
오종훈 대표는 이렇게 개발한 기술을 세계 시장으로 수출하기 위해서는 해외시장에 밝은 인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양정고 독서서클에서 친했던 이희수 전무를 스카웃했다.
이희수 전무는 삼성물산 브라질 대만지사 등에서 근무해 해외시장개척과 기획업무에 능했다.
오 사장은 전략기획업무를 이 전무에게 부탁한 것이다.
이 DDC를 시장에 내놓자 LG전자에서 먼저 채택했다.
그러자 일본의 소니와 도시바도 이를 채택했다.
싱가포르의 크리에이티브랩스,중국의 하이테커 등도 뒤따랐다.
덕분에 팔서스테크놀러지는 최근 기업을 확장하면서 벤처캐피털로부터 투자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팔서스가 첨단 기술을 가졌지만 매출이 초기단계여서 투자해주려는 곳이 없었다.
이때 선뜻 투자에 응해준 사람이 네오플럭스의 김용성 사장이었다.
김용성 사장은 "평소에 공대교수가 창업한 회사에 투자하는 걸 꺼려왔다"고 잘라 말한다.
왜냐하면 공대교수 출신들은 너무 기술만 중요시하고 경영을 등한시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오종훈 대표를 만나 보곤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엘리트는 엘리트를 알아본 것일까.
팔서스에 투자한 김용성 사장은 기업을 꿰뚫어보는 눈이 무척 뛰어난 사람이다.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와튼스쿨에서 MBA를 받은 그는 92년 맥킨지 서울사무소를 창립해 60여개 업체의 전략 구조조정 업무를 처리해냈다.
그는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맥킨지의 글로벌 파트너로 선임되기도 했다.
노벨상 수상자인 MIT의 봅 슬로우 교수와 "맥킨지 리포트:한국생산성 연구"를 펴낸 사람이기도 하다.
김 사장은 참 독특한 경영이론을 갖고 있다.
"백두산이 우뚝서려면 개마고원이 있어야 한다"는 이론이다.
다시말해 기업도 백두산처럼 솟아오르려면 개마고원이 받쳐줘야 성공한다는 설명이다.
개마고원 없는 백두산은 백두산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기업 내부경영뿐아니라 외부관계에서도 그렇다고 한다.
김 사장은 팔서스의 오중훈 사장을 만나자 마자 "저 정도면 우리가 개마고원 역할을 해줄 수 있겠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거꾸로 김사장도 사내에서는 "개마고원"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최광주 부사장과 이병락 상무 등이 그에게 개마고원 역할을 한다.
네오플럭스의 최광주 부사장은 M&A에 귀재다.
연세대 경영학과 출신인 그는 벨기에 인터브류와 OB맥주의 합작 두산코카콜라 매각 두산의 카스맥주인수 코닥 3M 네슬레 투자지분매각 등 20여건의 M&A를 처리해낸 인물이다.
그의 이같은 실무경험이 개마고원 역할을 맡고 있다.
이병락 상무는 네오플럭스에서 회계 재무관련 업무를 맡는다.
연세대 경영학과와 서울대 대학원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는 안진회계법인에 근무했다.
국민기술금융팀장을 맡기도 했다.
공인회계사인 그는 네오플럭스에 근무하기 이전부터 김용성 사장의 개마고원이었다.
이렇게 개마고원 역할에 충실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네오플렉스는 팔서스를 "백두산"으로 솟아오르게 하는데 큰 도움을 줄 전망이다.
팔서스의 기술을 채택한 LG제품이 최근 영국 홈엔터테인먼트지로부터 베스트바이상을 수상했다.
특히 음질평가에서 최고평가인 별 다섯 개를 획득하기도 했다.
덕분에 팔서스는 미국의 나스닥 상장사인 G사가 대규모투자를 하겠다고 나섰다.
미국 C그룹도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고 제의해왔다.
이처럼 개마고원이 되겠다는 회사가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자,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들 스스로도 주변을 한번 되살펴보자.
현재 외부에서 떠받쳐주는 개마고원이 얼마나 있는지를 짚어보자.
아직 개마고원이 없다면 지금이라도 개마고원이 형성되도록 힘을 쏟자.
r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