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3일자) '반쪽 FTA' 마저 무산된다면

우리나라와 칠레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사실상 결렬될 위기에 처했다. 가장 큰 걸림돌이던 시장접근 부문을 비롯해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합의에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칠레의 금융서비스시장 개방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단 24일로 최종결정을 미뤘지만 양국간 현격한 입장차와 연말 대선 등 추후일정을 감안할때 당초 목표대로 연내 협정체결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한·칠레 FTA는 양국 교역규모가 크지 않은데다 이해당사자들의 반발로 인해 민감한 품목들을 관세철폐 예외품목으로 인정하다 보니 일부에선 '무늬만 FTA'라는 시각이 있는게 사실이다. 다른 한쪽에선 정부가 한건주의식으로 협정체결에만 급급해 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FTA 협상 무산위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건 큰 잘못이라고 본다. 우선 FTA는 우리가 심사숙고 끝에 자발적으로 선택한 통상전략이라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세계 12위의 무역대국이고 우리경제가 수출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FTA에 적극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방법밖엔 달리 길이 없는 게 자명하다. 게다가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FTA를 체결하고 경제블록을 강화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지금까지 어느 나라와도 FTA를 체결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과 대만 밖에 없다는 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집단이기주의와 정치권의 인기영합적인 행태가 여전히 판을 치고 있으니 우려할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쌀 사과 배 등 주요 농산물을 각각 관세철폐 예외품목으로 하고 양념류를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 이후에 다시 논의하기로 하는 대신,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을 관세철폐 예외품목으로 양보하는 바람에 한·칠레 FTA는 반쪽짜리로 지적되고 있는 상황인데,이마저 성사시키지 못한다면 앞으로 멕시코나 일본,더나아가 한·중·일 FTA를 어떻게 추진할 수 있겠는가. 한·칠레 FTA가 결렬위기를 맞은데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다고 본다. FTA 체결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여권 일각을 비롯한 정치권 분위기, 협상에 참여한 관계부처간 혼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이다. 경위야 어떻든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교역환경에서 우리경제가 살아남기 위해선 FTA 체결을 내년 이후로 미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정부는 한·칠레 FTA 타결에 적극 나서야 하며 다른 나라와의 FTA도 강력히 추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