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가톨릭과 노동운동 .. 安國臣 <중앙대 교수.경제학>

"공평을 기대했는데 유혈이 웬말이며,정의를 기대했는데 아우성이 웬말인가." 이스라엘의 선지자 이사야가 전하는 야훼 하나님의 탄식이다. 4개월 가까운 농성 끝에 성모병원에서 강제로 끌려나가던 가톨릭중앙의료원의 노조원들은 야훼 못지않게 탄식했을 것이다. 지난 달 25일 이후 명동성당에서 천막노숙을 하는 노조원들,특히 단식농성까지 하는 조합원들은 '가톨릭이여 각성하라'고 부르짖고 있다. 지난 주 보건의료산업노조는 "서울대교구는 장기 파업사태를 더 이상 방치하지 말고,화해와 용서라는 가톨릭정신에 입각해 평화적으로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노조는 지난 16일 시한부 연대파업에 이어 이번 주 로마교황청에 원정투쟁단을 보내고,11월 초순 2차 총파업 투쟁을 계획하고 있다. 가톨릭은 노동계와 더불어 지난 암흑기에 민주화운동을 이끌었으며,노동운동의 정신적 후원자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대립적인 관계로 바뀌었는가? 문제의 발단은 보건의료산업노조의 전 지부 동시파업투쟁 결의에 따라 5월 23일부터 강남성모병원 로비에서 1천4백여명의 가톨릭중앙의료원 노조원들이 파업에 돌입함으로써 시작됐다. 노조는 같은 날 미합의 3개사항에 대해 중앙노동위원회에 중재신청을 했다. 중앙노동위는 6월5일 직권중재 결정을 내렸다. 임금을 7.4% 올리도록 하고,미합의사안이었던 노조의 인사권 참여와 사학연금문제는 단체협상에서 제외한다는 것이 중재내용이다. 노조는 이 직권중재안도 거부하며 파업을 지속했다. 노조원들이 성모병원을 장기간 점거·농성하면서 정상적인 진료가 어려울 정도로 심한 피해가 일어나자 병원측은 공권력투입을 요청했다. 9월 11일 경찰에 의해 강제로 끌려 나간 노조원 중 2백여명이 명동성당 경내를 점거하고 농성에 돌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의료기관은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돼 직권중재 결과가 단체협약과 동일한 법적 효력을 가진다. 노조가 중재 철폐를 주장하지만 중재 결과는 기정사실이 됐다. 이제 파업의 핵심 쟁점은 '무노동 무임금'과 '파업책임자 징계' 문제이다. 노동계는 무노동 무임금 철폐와 파업책임자에 대한 징계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일반 영리기업의 사용자처럼 무노동 무임금과 파업책임자 징계를 고집하는 것은 사랑과 포용의 가톨릭교회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의료원측은 잘못된 것을 묵과하고 불의와 타협하는 것이 사랑과 포용이란 이름으로 오용될 수는 없다고 반박한다. 이번의 가슴아픈 사태를 통해 환자를 볼모로 한 불법파업을 뿌리뽑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질 줄 아는 선진 노사문화를 세워야 한다는 단호한 입장이다. 노조가 실정법과 환자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고 물리력을 동원하여 일방적인 요구를 내세우며 정치투쟁의 일환으로 장기파업을 벌여 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것이 온유하지만 고지식한 의료원 사람들에게 '이건 아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이건 아니다'는 생각은 일찍이 가톨릭이 폭력적인 군부독재정권에 맞서 일어나게 한 동력이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까다로운 '심문'에 의료원측은 당당하게 자기 입장을 변호하면서 어떠한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정의와 진리,법과 원칙을 지킬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노조가 주장하는 '평화적'해결은 불의와 타협하는 것이며,집단 이기주의의 노조가 각성해야 한다는 의료원의 입장은 천주교서울대교구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성모병원노조와 보건의료노조가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힘에 의존하고 그리스도정신에 호소하는 전술은 효과가 없어 보인다. 정의와 진리,법과 원칙이 자기 편에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는 어렵다. 현재 노조가 관철코자 하는 것은 공평도 정의도 아니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온유하고 순진한 믿음의 사람들을 '확신범'으로 만든 전술적 잘못을 노조가 인정하고 성경에 나오는 '돌아온 탕아'가 되는 것이 최선의 갈 길이다. 노조가 바라는 가톨릭의 화해와 용서는 '탕아'가 돌아올 때에 가능한 것이다. 이번 홍역을 통해 사회의 기본이 바로 서고 가톨릭과 노동계가 더욱 건전한 동반자 관계로 올라서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ksahn@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