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하얀방'] 死를 잉태하고 生을 죽이는 곳 .. 임신.낙태소재

제2회 광주국제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선정돼 화제를 모았던 공포영화 '하얀방'(감독 임창재)이 영화제 개막일인 지난 25일 일반에 공개됐다. '하얀방' 시사회에 참석했던 관객들은 극한적 공포로 인해 상영 도중 여러차례 비명을 질렀고 출연진과 관객의 대화시간에는 영화속 여성성에 대해 논란이 일었다. '하얀방'은 임신과 낙태를 소재로 한 여성영화이지만 남녀관계의 이율배반성,사회적 성취욕과 반비례하는 인간관계의 진실성 등 광범위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기둥 줄거리는 미혼 여성들의 연쇄적인 의문사를 추적하는 형사(정준호)와 그를 취재하는 방송국의 여성 PD(이은주) 이야기. 피해자들이 모두 같은 인터넷사이트에 접속했고 사체들이 '임신증후군'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 단서로 제시된다. 일부 관객들은 임신증후군의 여성을 피해자로 상정한 것에 대해 반여성주의라고 비판했다. 임신이란 고귀한 생명을 잉태한 상태이며 임신부가 다칠 경우 두 개의 생명이 위협받는다는 점에서 금기의 영역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영화 전체는 낙태에 대한 인간의 죄의식을 부각시키고 있어 오히려 '여성 영화' 내지 '휴머니즘 영화'라는 견해가 힘을 얻었다. 또 난마처럼 얽힌 사건을 여성이 스스로 해결함으로써 강한 여성성을 부각시킨다는 견해도 나왔다. 이 영화에서 공포를 유발하는 것은 버려진 여자란 고립감,낙태의 주인공이라는 죄의식이다. 여기에 인터넷을 통해 전달받는 살의가 공포를 가중시킨다. 인터넷의 가상공간적 특성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혼란스럽게 하고 '끔찍한' 가상이 현실을 압도하는 상황을 연출한다. 제목 '하얀방'은 죽음이 잉태된 자궁을 뜻한다. 주인공들은 하얀방에서 가상적인 죽음을 체험한다. 그러나 모성애가 너무 감상적으로 그려지면서 장르의 혼돈을 야기시킨다는 것이 약점으로 지적됐다. 논리적인 형사 정준호의 역할 축소도 미스터리물로서의 특징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꼽혔다. 11월15일 개봉. 광주=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