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초점] 日 '이빠진' 디플레 대책, "시장 무덤덤"

일본 정부가 정쟁을 거치며 산고 끝에 내놓은 종합 디플레이션 대책이 시장에서 별다른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지난 30일 저녁 경제재정자문회의를 열어 부실채권 처리 및 산업재생기구 설치 등을 골자로 한 종합 디플레 대책을 확정했다. 주요 내용은 △ 부실채권을 오는 2004년까지 현재의 절반으로 줄이고 △ '산업재생 및 고용대책 전략본부'를 신설하며 △ 실업에 대비한 사회안전망을 확충한다는 것이다. 다케나카 장관은 대책 발표 뒤 "개각 이후 한 달간 논의를 거쳤다"며 "경제개혁을 위한 좋은 출발"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발표 직후 국제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일본의 '디플레이션 대책'에 대해 실망스러운 수준이라며 일본의 국가신용전망을 바꿀 계기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우존스도 "일본 정부가 반발을 최소화하는 타협안을 선택했다"고 지적했다. 31일 개장된 도쿄 증시에서 닛케이225 평균지수는 뉴욕시장의 상승세로 개장초 상승세로 출발했으나 개혁후퇴에 따른 실망매물이 나오며 약세로 돌아섰다. 일부 은행주가 디플레 대책이 완화되자 상승세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디플레 대책에 대해 시큰둥한 모습이다. 오히려 기업실적이 증시 모멘텀으로 작용하고 반도체 가격 동향과 함께 소비자신뢰지수가 9년중 최악의 수준을 기록한 이후 미국의 경제지표에 더 신경이 곤두서 있다. 디플레 대책의 핵심 열쇠인 은행회계제도 개혁은 은행권과 정치권의 반발로 현행제도를 엄격히 한다는 수준에 그친 점이 문제로 부각됐다. 고이즈미 총리는 "회계제도 개혁의 시기를 명문화하지 않았지만 부실채권 처리 가속화의 의지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언론들은 '다케나카 개혁의 후퇴'로 받아들였다. 대책에는 은행권 부실채권 및 자기자본 산정 기준을 강화해 은행의 재무건전성을 높이고 향후 은행 위기가 예상될 경우 공적자금 투입 및 일본은행(BOJ)과 공동보조를 취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부실채권 해소가 가속화되면서 우려되는 신용경색 및 기업 연쇄도산을 방지와 관련, 은행권 보유 부실채권을 매입하는 기존 정리회수기구와는 별도로 '기업회생지원기구'를 설립키로 했다. 이 기구는 주채권은행이 회생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기업의 채권을 공정가에 매입하고 해당 기업에 대한 추가대출 및 보증업무를 맡는다. 아울러 1조엔 규모의 세금 감면을 통해 내수시장을 진작시킨다는 내용도 담았으나 대책 발표에 앞서 고이즈미 총리는 "이번 의회 회기 중에는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일본은행은 대책 발표에 앞서 국채매입한도를 높이고 당좌예금잔고 목표치를 상향 조정하는 통화완화책을 발표해 지원 사격을 가했다. 이어 정책위원회,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어 당좌예금잔액 조절목표를 늘려 자금공급을 추가로 늘리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일본은행은 현재 '10조∼15조엔'인 당좌예금잔액 조절목표를 '15∼20조엔'으로 늘리되 당분간 17조∼18조엔 정도를 공급할 방침이며 장기국채 매입액도 월 1조엔에서 1조2,000억엔으로 늘리기로 했다. 반면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誌)도 대책의 미흡함을 지적하면서도 "충실히 시행된다면 어느 정도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 한경닷컴 배동호 기자 lizar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