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세계화 어떻게 볼까 .. 정과리 <연세대 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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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는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현안 중 하나다.
자본주의가 현실사회주의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면서 고삐가 풀린 세계화는 거대한 해일이 되어 전세계를 덮치고 있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서 세계화는 국가를 초월한 움직임이지만 그러나 오늘의 세계화에서 이익을 끌어내는 국가와,그로부터 극심한 고통을 겪는 국가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얼마 전 일본 교토에서 몇몇 학자들이 모여 '자본주의가 인간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를 두고 토론을 벌였다.
그 자리에서도 초점은 세계화였고,이에 대해 선진국 학자들과 제3세계권 학자들은 극단적으로 입장이 갈렸다.
영미권의 학자들은 세계화가 궁극적으로 가차 없는 약육강식과 인간성의 상실을 야기할 수도 있는 위험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오늘의 세계화가 강렬한 경제적 욕망에 의해 추동되고 모든 것을 상품가치로 환원시킴으로써,인류를 만인 대 만인의 처절한 투쟁으로 분열시킬 사태에 대한 우려였다.
반면 브라질을 비롯한 제3세계 학자들이 지적하는 것은,세계화의 파고에 밀려 경제적 궁핍이 심해지고 있는 제 나라의 물질적 고통이었다.
보호주의와 수입대체산업에 의한 성장정책이 실패로 돌아간'상실의 십년(lost decade)'을 경험한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는 90년대 들어 신자유주의를 적극 받아들임으로써 새로운 전환을 꾀하고 있으나,라틴아메리카 농촌과 도시의 '사회적 기반을 부식'시키고 '미래의 궤도를 상실케 하는'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세계화의 흐름이 '방대한 범위에 걸쳐 분포돼 있는 국가 제도들의 블록'에 부닥침으로써,국가 간 차이와 불평등은 실질적으로 극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컨대 크루그만(Krugman)이 말하는 시장의'고결한 회로(virtuous circle)'에 모두가 끼여들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두개의 우려는 전혀 동떨어진 것은 아니겠지만,세계화의 밑바탕을 이루는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으로 다른 두개의 시각에서 비롯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즉 고전적인 정의를 따라 '보이지 않는 손'의 조정을 받는 자유경쟁체제를 자본주의로 보는 시각과,생산수단의 분리를 통해 자본에 의한 노동의 수탈로 보는 시각이 그것이다.
전자의 시각에서 보면 세계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치열한 경쟁 세계이며,후자의 시각에서 보면 세계는 자본가집단과 노동자집단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세계다.
예전의 지식인들은 대체로 1848년을 기점으로 전자의 자본주의로부터 후자의 자본주의로 넘어갔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20세기 후반에 와서 정보화사회와 초국가기업의 등장,기업 내부의 자율화(소사장제),그리고 문화산업의 팽창과 더불어 다시 자유로운 개인들의 세계가 부활했던 것이다.
(그러한 개인들의 세계를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것이 미국의 보보스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본주의 형태의 새로운 교체가 아니라,이 두개의 자본주의가 공존하면서 긴밀히 공모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는 데에 있다.
다시 말해 오늘날 세계의 전면에 화려하게 전개되고 있는 '열심히 일한 당신'들의 자유로운 활동세계는 실제로 구체적인 물질적 재화를 생산하는 노동세계의 고통이라는 지반 위에서 피어난 가상현실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실제 세계에서는 노동의 소외와 물리적 궁핍을 감수할 집단의 지속적인 창출이 벌어지고,가상 세계에서는 화폐의 균일화에 걸맞게,지식 문화 재화의 모든 차원에서 지배적 경향에 의한 단일화(미국화)가 전개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후발국에서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생산집단들로부터 일어나는 반세계화 운동은 그러한 의심을 한층 강화한다.
그러나 세계화는 돌이킬 수 없는 대세이고,가상현실이 실제현실을 압도하는 오늘의 경향도 아마 더욱 기승할 것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이 강조한 대로 '어떻게 불평등을 제거하느냐'가 관건일 터인데,그러나 불평등이 세계화의 지지구조라면 그러한 주문 자체가 연목구어일까 봐 걱정스럽다.
circ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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