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동대문 재봉틀소리 .. 김광현 <생활경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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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인 2일 밤 동대문 패션타운.
외환위기 후 '패션 1번지'로 떠오른 이곳은 일찍 찾아온 추위로 한적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젊은이들로 붐볐다.
두타 광장에는 경쾌한 음악이 요란하게 울려퍼지고 친구들과 재잘거리는 여학생들,팔짱을 끼고 걷는 젊은 연인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패션몰 안을 둘러보니 제법 장사가 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런데 상인들의 얘기는 딴판이었다.
"심상치 않다" "갈수록 나빠진다" "위기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동대문 패션타운은 생산과 판매,도매와 소매가 함께 이뤄지고 최신 패션상품을 싸게 살 수 있어 우리나라 패션산업의 새 희망으로 여겨지는 곳.그러나 시름시름 기력을 잃어가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상인들이 '위기'라고 느끼는 요인은 세 가지.
전국 곳곳에 패션몰과 아울렛이 들어서 고객이 분산된다는 점이 첫번째,주변에 패션몰이 계속 들어서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한다는 점이 두번째,중국산 의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점이 세번째다.
특히 중국산이 봇물 터진 듯 밀려들고 있어 동대문을 통째로 덮치고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지고 있다.
현재 동대문에는 "X상가가 새벽에 중국산 옷을 몰래 풀어놓는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중국산을 취급하지 않고는 장사하기 어렵다"느니 "중국산이 절반이나 되는 품목도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동대문에서 떨어져 있긴 하나 중국산만 파는 상가도 등장했다.
명동 밀리오레는 최근 지하 2층에 중국산만을 취급하는 G2B2란 상가를 열었다.
옷 생산을 중국에 아웃소싱하는 것은 나름대로 장점이 있고 불가피한 면도 없지 않다.
같은 옷이라도 중국에서 만들면 국내에서 만드는 경우에 비해 비용이 30%밖에 들지 않는다.
마무리 손질이 거칠다는 점이 문제이긴 하나 끊임없이 가르치다 보면 우리 수준으로 올라올 수 있다.
더구나 국내에는 재봉틀 앞에 앉겠다는 사람이 턱없이 부족하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인력이 부족하고 인건비가 비싸다는 이유로 중국산을 들여와 팔고 생산을 중국에 아웃소싱하기 시작하면 동대문 패션타운은 통째로 흔들리게 된다.
동대문의 강점은 생산과 판매가 한곳에서 이뤄진다는 점이다.
파리 도쿄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옷을 2,3일 후면 내놓을 수 있고 전국 어느 곳보다 싸게 팔 수 있는 것은 상인들이 직접 만들어 팔기 때문이다.
중국산을 들여와 팔기 시작하면 이 두 가지 강점이 없어지고 만다.
동대문에서 여성정장 가게를 운영하는 한 상인은 중국산을 '마약'에 비유했다.
이 상인은 "마구잡이로 중국 옷을 들여와 팔거나 중국에 아웃소싱하다 보면 동대문 옷의 이미지가 나빠져 어느 순간 소비자들이 외면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옷을 직접 만들어 팔지 않는다면 소비자들이 굳이 동대문을 찾을 이유가 없어진다"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비싼 인건비를 감수하면서 무조건 '국내 생산'을 고집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억지를 쓴다고 될 일도 아니고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원산지 표시와 차별화가 관건이라고 본다.
중국에서 들여온 옷에는 반드시 '메이드 인 차이나'란 표기를 하게 하고 국내에서는 한 단계 수준 높은 옷을 만든다면 동대문의 기반은 유지될 수 있다.
물론 상인 한두 사람이 나선다고 될 일이 아니다.
민·관 협의체를 통해 다각도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동대문 패션타운이 뜨기 시작한 90년대 말 동대문 뒷골목을 취재한 적이 있다.
그때 뒷골목 '재봉틀 소리'에서 동대문의 경쟁력이 비롯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중국에 밀려 뒷골목에서 재봉틀 소리가 멈추는 날엔 동대문 패션타운에서 불빛이 사그라들지 않을까 걱정된다.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