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주주중시기업制'의 함정 .. 趙東根 <명지대 교수.경제학>

정부는 최근 주식시장에 더 많은 돈이 유입될 수 있도록 '주주를 중시하는 50개 기업'을 선정해 이들 기업을 한국의 대표적 기업군으로 키우고,여타 기업은 2류 기업으로 인식되도록 유도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그리고 공정한 선정을 위해 외국인을 포함한 중립적이고 명망 있는 인사로 선정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한다. 이대로라면 기업은 우열(優劣)반으로 나뉘게 된다. 한마디로 정부가 주관하는 '기업미인 선발대회'를 열겠다는 것이다. 정부 구상의 논거는 다음과 같다. 외환위기 이후 위험관리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주식투자를 꺼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투자자들의 주식시장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주주를 중시하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기업의 옥석을 가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으로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과 기업실적 및 배당성향을 제시하고 있다. 최근 투자자들이 배당을 염두에 둔 투자성향을 보임에 따라 정부의 구상은 이러한 추세와 맞물려 순기능을 발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장이 아닌 정부가 승자를 선택(picking winners)하겠다는 것은 시장의 자율을 저해하는 시장역행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선정에 탈락돼 투자자에게 2류 기업으로 비쳐지는 기업들은 이미지 실추,주가 및 매출 하락 등 경제적 손실이 예상된다. 또 이때 선정기준에 문제라도 제기되면 기업이 입은 '선의의 피해'에 대한 책임문제가 대두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정부 의도대로 여타기업이 2류기업으로 인식된다면 증시기반이 취약해져 자금 유입이 오히려 줄 수도 있다. 정부 구상의 가장 큰 위험요소는 주주중시 기업 여부의 평가에 있어 선정위원회 평가능력을 과신하는 것이다. 선정에 따른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가배당률,사외이사선임 비율,자기자본수익률 등 정량화된 지표를 기준으로 삼겠지만,이들 지표로 주주중시 경영을 갈음할 수는 없다. 예컨대 기업의 성장잠재력을 훼손하는 높은 배당이 과연 주주를 위한 경영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주주중시 기업 여부의 평가는 기본적으로 시장의 몫이다. 또한 관(官)이 개입하지 않더라도 주주를 중시하지 않는 기업은 투자자로부터 외면 받기 때문에 기업은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주주를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그 방법이 기업마다 다를 뿐이다. 따라서 주주중시 여부를 일정한 틀에 넣어 판단하겠다는 발상은 지적(知的) 오만이 아닐 수 없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주주를 중시하는 바람직한 지배구조의 전형(典型)이 무엇인지 '선험적'으로 판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업가치의 극대화가 전제되지 않은 주주중시 경영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선점하는 자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글로벌 경쟁시대에는 '속도경영'이 중요하기 때문에 기업가치 제고와 주주를 위해 어떤 지배구조가 적합한지 속단할 수 없다. 또 투명성의 개념과 범주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투명성의 요체는 주주가 주식을 계속 보유할지 여부를 합리적으로 판단케 하는 회계와 공시자료의 신뢰성이다. 따라서 투명성을 의사결정구조와 권한위임 구조를 의미하는 기업지배구조에 연계시키는 데에는 무리가 따른다. 투자자의 판단을 돕기 위해 기업 특성을 여러 각도에서 평가할 필요는 있다. 이러한 평가는 이미 기업애널리스트와 금융회사 등 평가기관에서 '추천'의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개입하면 양상은 달라진다. 정부 평가는 추천을 넘어 '보증'의 성격을 띠게 되며,투자자는 투자위험을 정부에 전가시키는 도덕적 해이에 빠질 수 있다. 따라서 기업평가에 있어 정부가 시장을 대신해서는 안되며,설령 대신한다 하더라도 더 좋은 결과를 낳으리란 보장이 없다. 정부가 컨설팅 주체가 아닌 이상,투자자의 자율역량 신장을 위해서도 이러한 구상은 타당치 않다. 바람직한 정부의 첫째 조건은 정부가 해서는 안될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자본시장의 규율을 바로 세우고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도장치를 마련하며,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바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dkcho@mju.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