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보졸레 누보

포도주 애호가들은 해마다 11월을 기다린다. 햇포도로 만든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의 병뚜껑이 셋째주 목요일 0시에 열리기 때문이다. 올해도 포도작황이 좋아 벌써부터 그 맛에 가슴 설레는 사람들이 많다는 소식이다. 보졸레 누보는 프랑스 리옹의 북쪽에 위치한 보졸레 지방에서 생산되는 포도주를 말하는 것으로 누보는 새로운(new)이란 뜻이다. 이 지역의 한해 생산량은 대략 6천만병으로 이 가운데 50%정도가 해외에서 소비된다고 한다. 보졸레 누보는 개봉시간까지 법으로 규제할 정도로 관리가 철저하다. 프랑스는 와인이 미리 개봉되는 것을 막고 전세계가 같은 시간대에 마실 수 있도록 배송날짜도 정하고 있는데 자동차 비행기 등을 총동원해 단기일에 수송한다. 보졸레 누보가 명성을 얻게 된 것은 70년대 한 농민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포도경작자인 조르주 디베프는 보졸레의 포도품종인 가메(Gamay)의 질이 보르도와 부르고뉴 지방의 포도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데도 싸구려 와인으로 취급당하자 자존심이 몹시 상했던 것이다. 그는 '햇포도주'라는 점과 '상쾌한 맛'을 강조하면서 세계인이 같은 날 포도주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마케팅전략을 짰다. 이 전략은 그대로 먹혀들어 각국 와인 애호가들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우리나라에서는 4∼5년전부터 보졸레 누보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해마다 수입량이 급증하고 있다. 99년엔 20여만병에 불과했으나 지난해엔 3백만병이나 됐다. 올해의 경우도 백화점과 와인판매점에서는 예약판매가 지난해에 비해 40%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전국의 호텔과 와인동우회 등이 벌이는 시음행사도 다양하다. 보졸레 누보는 포도를 1주일 정도 발효시킨 뒤 4∼5주간의 짧은 숙성기간을 거쳐 생산되기 때문에 맛이 가볍고 상큼한 게 특징이다. 파리의 노동자들이 유리 물병에 넣어 마시던 보졸레와인이 세계적인 인기 포도주로 부상한 것은 적극적인 마케팅과 엄격한 품질관리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