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얼굴 .. 배찬희 <시인>

bezzang0815@hanmail.net '마흔의 산을 넘으며/혹혹(惑惑) 눈 밝히며 달려드는/유혹의 지뢰를 만난다./너무 힘 버거워/이름이라도 불혹이라 붙여놓고/슬쩍 피하면 아! 어느새/발목 하나 잘려 나가고 말았나….' 이 시는 필자가 불혹이 되던 해 쓴 '마흔 일지'의 일부이다. 이 글에서처럼 나는 마흔이라는 불혹의 나이를 유혹의 정수리라고 생각한다. 남녀 누구나 마흔쯤 되고 보면 가정적,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되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생기면서 마음 한 구석에 서서히 구멍이 뚫리기 시작한다. 처음엔 개미구멍처럼 작기에 자신도 느끼지 못하다가 한 발 한 발 자신을 정당화시키면서 유혹의 늪으로 발을 들여놓게 된다. 결국 거대한 댐도 개미구멍 때문에 무너지고 말듯이. 꽤 형이상학적인 물음에서 출발해 조금씩 녹록해지는 마음을 앞세우고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형이하학적인 쾌락의 지뢰를 밟아 돌아보면 발목 하나가 잘리고 없다. 어느 새 절름발이가 된 자신을 되돌아보지만 그 후유증은 만만치 않다. 그래도 다행히 나는 부모님이 물려주신 얼굴이 시쳇말로 범생이 그 자체라고 한다. 타인이 내게 거는 모범생 답안의 인생을 적이 부담스러워하면서도 탄성이 좋은 고무줄처럼 반경 몇 킬로미터 이내에서 벗어나지 않는 모범생 인생을 살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이 물려주신 얼굴 때문이다. 하나 이젠 내가 내 얼굴을 만들어야 하는 불혹이 되고 보니 그 불혹의 뜻을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나 스스로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가며 또 다른 나만의 얼굴을 만들어 갈 때 유혹도 인생의 양념이 될 것이다. 오늘은 화장을 지우고 거울 앞에 맨 얼굴로 서 본다. 그 맨 얼굴이 낯설지 않을 때 비로소 내 안에 어떤 사계절이 피었다 지더라도 피고 지는 그 푸르름으로 세월을 점칠 수 있으리라. 연두 빛 봄날도,삼일주야 내리던 장마 비도,황홀해 너무 황홀해 바라보던 쪽빛 하늘도,후ㅡ후ㅡ 입김마저 얼려버릴 매정한 바람도 간이역처럼 스쳐 지나간다. 이렇게 우리네 삶도 자연과 닮아 때론 아쉽고 때론 몸살나게 지루하지만,그 속에서 내 얼굴이 만들어지고 나와 함께 동행하는 한 남자의 얼굴이 다듬어지고 나와 그가 합작으로 만들어 놓은 새 생명 하나가 매운 계절 속에서도 씩씩하게 여물어 가고 있다.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