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 KOREA] '스타 기술인이 되자'..삼성 '펠로'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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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기술인을 키운다.'
삼성그룹은 최근 핵심 기술분야의 세계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고 신사업과 전략분야의 기술개발에 크게 기여한 삼성종합기술원의 서양석 연구위원(50.상무급)과 유인경 연구위원(49.상무보급)을 '펠로(Fellow)'로 임명했다.
펠로는 삼성을 대표할 수 있는 'S(Super)급' 기술 인재로 그룹이 정한 인재 평가 기준 가운데 가장 높은 것이다.
펠로는 전속 연구팀을 구성해 회사 프로젝트는 물론 독자 프로젝트도 추진할 수 있으며 삼성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
LG전자도 최고 실력을 갖춘 엔지니어인 '그레이트 피플'을 다음달에 선정한다.
그레이트피플은 창원공장에 설립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다.
국내외 기업의 스타 기술인 육성 사례를 소개한다.
서양석
서양석 연구위원은 최근 두가지 행운을 안았다.
하나는 10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동영상 압축해제기술(MPEG) 국제 표준화 작업에서 5건의 관련 기술을 표준으로 채택되도록 한 것이다.
삼성의 기술이 세계적인 수준임을 증명해 보인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삼성 펠로로 임명된 것이다.
"펠로가 된 후 부담감을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 첫번째 펠로인 만큼 기업 연구원들의 모델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등으로 인한 환경변화에도 흔들리지 않고 연구개발분야에서 한 우물만 파온 보람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그는 지난 75년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91년 삼성종합기술원과 인연을 맺었다.
대학과 정부출연연구소로부터의 스카우트 제의를 뿌리치고 결국 기업 연구소를 택했다.
"기술원에 들어갈 당시만 해도 일본기술에 의존했습니다. 기술자립을 위해 정말 열심히 연구했습니다."
그는 국산 신기술을 잇따라 내놓기 시작했다.
미니 디스크를 국산화하고 컬러TV용 디지털 색처리 칩을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그는 모두 9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 4편은 세계전자공학회(IEEE) 등 세계적 학술지에 실렸다.
특허도 16건이나 출원했다.
"'∼다워야 한다'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습니다. 엔지니어는 엔지니어다워야 하고 학생은 학생다워야 하며 교수는 교수다워야 합니다."
그는 "기업 연구원은 기업이 지향하는 목표에 맞춰야 한다"며 "기술과 기업경영을 감안한 연구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수나 정부 출연연구원들과도 자세가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기술이 구세대에서 신세대로 바뀌는 변곡점에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이 나와 또 다른 기술진보를 이뤄내야 할 때입니다."
그는 "미국 미래학회에서 펴내고 있는 격월간 '퓨처리스트'를 탐독하고 있다"며 "미래학자들의 상상의 나래속에서 한국을 살릴 수 있는 기술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간관계에서만 인연이 있는게 아니라 기술에서도 인연이 있다고 봅니다. 자신의 역량과 주변 여건이 맞아 떨어져야 신기술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는 "그 인연이 닿도록 항해를 계속하는게 펠로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유인경
"에디슨은 모두 2천가지를 발명해냈습니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자신의 아이디어로 개발한 것은 2가지 뿐입니다. 나머지는 남이 포기한 것이었거나 기존의 발명품을 개량한 것이었습니다."
유인경 연구위원은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 인재는 노벨상을 받은 아인슈타인과 같은 인물보다는 바로 에디슨형"이라고 강조한다.
유 위원은 지난 75년 한양대공대 금속과를 졸업한 후 미국 버지니아공대에서 재료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93년 삼성종합기술원과 인연을 맺으면서 손을 댄 것은 당시로선 아무도 알지 못했던 F램분야.
"F램 연구 초기에 연구소장이 이 분야를 나에게 맡긴다고 했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막중한 책임감으로 2년동안 집중적으로 연구했습니다."
그는 "당시엔 힘들었지만 연구에 몰두했던 그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자연상태에서 전기적 분극이 일어나는 물질인 강유전체(强誘電體)의 초전도 현상을 이용해 차세대 반도체 공정이론을 정립했다.
이 분야에서 60여건의 특허를 내고 30여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에 힘입어 국제 강유전체학회 고문 및 강유전체 박막 표준화위원회 위원도 맡고 있다.
그는 반도체 외에 전자세라믹재료, 전기, 공정설비 등도 섭렵했다.
지금은 반도체 외에도 센서 연구로 눈을 돌리고 있다.
연구원에서 아이디어 박사로 통한다.
전기공학과 출신이면서 노벨화학상을 탄 일본의 타나카 고이치씨와도 닮은 꼴이라 할수 있다.
유 위원은 관리직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여러번 있었다.
그러나 이를 거부했다.
엔지니어로 출발한 이상 기술인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게 그의 신조다.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 것은 본분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그는 "가장 가슴이 아팠을 때는 힘들여 개발한 기술에 대해 특허를 따지 못하고 이를 사장시켰을 때"라며 "그렇지만 위축되지 않고 마음을 차분하게 달래며 다시 시작하곤 했다"고 설명했다.
"후배들에게 지적 호기심을 갖고 항상 변화하도록 주문합니다. 기업체 연구원은 목표가 명확해야 합니다."
그는 "학생과 교수는 학위와 명예를 위해 연구하지만 연구원은 생존을 위해 연구해야 한다"고 거듭 힘주어 말한다.
오춘호 기자 strong-kor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