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 美고관들의 말 조심

미 정부의 장관이나 백악관 보좌관들은 연설 강연 등을 자주 한다. TV 출연이나 신문기고도 망설이지 않는다. 분초를 쪼개 쓰는 사람들 치곤 대외행사에 자주 참석한다는 느낌을 받는 때가 많다. 하지만 주요 정책에 관해서는 기자들의 추측보도를 불가능하게 만들 정도로 입을 조심한다. 수시로 입을 열지만 서로가 입을 맞춘 듯 기본 골격만 강조할 뿐 이다. 확정되지 않은 정책을 미리 얘기하는 법은 거의 없다. 국민들에게 전달되는 언론의 내용이 비교적 일관되게 보이는 것도 그들의 신중한 발언 때문이다. 지난 주말 미국 상공회의소가 주최한 '2003년 경제전망'세미나에서도 고위당국자들의 조심스런 발언습관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로렌스 린지 백악관 경제보좌관의 강연이 끝난 뒤 '추가 세금감면'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그러나 린지 보좌관 입에서 나온 내용은 한결같이 "어제 대통령이 말씀하신 내용외에는 할 말이 없다"는 것이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전날 "경제를 회복시키고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추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린지 보좌관은 그 이상 나가지 않았다. 이어 등장한 캐틀린 쿠퍼 상무부 차관보도 "린지 보좌관이 미 정부의 입장을 이미 설명했다"며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지 않았다. 추가 경기부양책을 취재하기 위해 몰려든 기자들은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고위 공직자들이 이처럼 입조심을 하는 탓에 언론의 추측 보도는 거의 없는 편이다. 부처간 의견 대립이나 강온파 간의 논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언론이나 강연 등을 통해 전달되는 행정부의 입장은 비교적 일사불란하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정세현 통일부 장관이 내년 1월까지 북한에 중유를 계속 공급하길 희망한다고 밝혀 논란을 빚었다. 중단 방침을 이미 정한 미 정부는 물론 한국의 외교통상부에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고위공직자들이 정책홍보나 설명을 주저할 필요는 없다. 국민들의 협조를 얻거나 설득하는 일은 그들의 의무이기도 하다. 한가지 바란다면 성급한 추측을 낳거나 혼란을 부추기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해달라는 것이다. 워싱턴=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