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진짜 대통령감 .. 柳東吉 <숭실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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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하게 싸우는 모습은 아름답다.
당당하다는 것은 '야비하지 않다'는 것이다.
스포츠든 선거든 구경하는 모두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당당하고 깨끗한 싸움이다.
대선주자들의 행보에 눈길이 쏠린다.
국민통합21의 정몽준 후보와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간 후보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 결과 발표가 임박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결과에 승복할 것인지도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지난 22일 밤 TV토론에서도 나타났듯이 노무현·정몽준의 생각과 정책은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정당이란 게 이념이나 정책과는 상관없이 단순히 선거를 치르기 위한 애매한 동맹은 아닐텐데 단일화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모르겠다.
대통령을 뽑는 것은 유권자인 국민이다.
'이회창은 대통령이 돼서는 안된다'며 생각과 정책이 다른 정몽준 후보와 노무현 후보가 '반창(反昌)연대'를 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자기의 길을 가야 할 두사람이 어느 한사람은 대통령 후보,다른 한사람은 선거대책위원장이 돼서 서로 다른 주장을 하던 정책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지만 단일화가 옳든 그르든 심판은 국민의 몫이다.
한나라당이 후보단일화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상하다.
누구와 겨루든 당당히 싸우면 된다.
선택은 국민이 한다.
지난 87년 대선에서 손을 잡았어야 했던 YS와 DJ는 갈라서서 국민을 실망시켰다.
97년 대선에서 DJP는 손을 잡았다.
결과를 놓고 보면 그건 잘못된 만남이었다.
국민은 당당히 싸우는 걸 보고 싶어 한다.
싸울 가치가 있으면 싸워야 한다.
이기고서도 지는 싸움보다,지고서도 이기는 싸움을 할 수 있다면 그건 멋진 정치다.
당당하지 않은 싸움은 안된다.
한판으로 끝장나는 싸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총선 지방선거 또 대선은 끝없이 이어진다.
정당과 정치인들은 그런 선거를 대비하기 위해서 씨앗 뿌릴 생각은 왜 하지 않는 것인가.
'야인시대'라는 TV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다.
잘 알려져 있는 김두한의 주먹세계를 다룬 것이다.
그의 실제 생각과 행동이 어떠했든,드라마에서는 야비하지 않고 당당하다.
이 드라마의 인기는 변절과 배신,기회주의와 권모술수가 판치는 현실에 대한 환멸과 반발심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주먹세계에서는 서로 생각이 다르면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1대1 주먹으로 싸운다.
결과에 깨끗이 승복한다.
선거전은 1대1 힘의 대결이 아니다.
싸우는 모습을 보고 국민이 승자를 결정한다.
신제품을 생산해서 아무리 광고를 많이 해도 그 제품이 성공하려면 품질이 좋아야 한다.
비록 소비자에게 알려지기까지 시간이 좀 걸릴지라도 품질이 좋으면 많이 팔리게 돼있다.
남의 제품이 나쁘다고 해서 자기 제품이 잘 팔리는 건 아니다.
자기 제품이 좋다는 걸 소비자에게 인식시켜야 한다.
선거도 이와 다를 바 없다.
대선후보들의 자질과 정책을 검증한다는 TV토론이라는 것도 수준 낮은 면접시험 같다.
경제에 관한 어떤 질문에도 거리낌없는 답변이 나온다.
유식하다기보다 용감하다고 보는 것이 옳다.
'사람은 행동할 때보다,입으로 말할 때 더 대담해진다'는 말은 정치인들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 아닌가.
구체적 문제를 질문 받고 '잘 모르겠다''제대로 아는 사람들을 경제팀에 쓰겠다'고 답하는 후보는 왜 없는가.
그런 답을 한다면 그가 진짜 대통령감이라고 해야 한다.
어떤 문제든 거론되기만 하면 '예산을 많이 배정하고 투자를 많이 하겠다'고 한다.
세입증대방안에는 말이 없다.
열심히 땀 흘리자는 이야기도 없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모든 부문에 예산을 늘리고 모두에게 잘 해주겠다고 한다.
경제정책은 선택이다.
자원은 한정돼있다는 전제아래 우선순위에 따라 순차적으로 해결해 가는 것이 경제문제다.
누가 당선되든 문제는 나라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에 있다.
당선자에게 선거 때 공약을 잊어버리라고 하면 어떨까.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는 비난보다,나라를 위한 위대한 선택이라는 찬사가 따를 것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공약무용론을 말하자는 것이 아니다.
실천할 수도,그럴 생각도 없는 공약을 쏟아내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다.
yoodk9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