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맞수] 조영선 <싸이버뱅크 사장> - 박영훈 <제이텔 사장>

1966년 서울 출생 1989년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1993 서울대 경영학 석사 1993~1996년 삼성물산,삼성그룹 회장비서실 근무 1997~2001년 IBS,부즈앨런&해밀턴,보스턴컨설팅그룹 등 근무 2001년 11월 제이텔 대표이사 1962년 전북 익산 출생 1985년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졸업,1995년 서울대 공학 석사 1985~1999년 대우정밀,서해시스템,금호KD통신 등 근무 1995년 다한전자 설립 1999년 8월 싸이버뱅크 대표이사 .............................................................................. 고진감래(苦盡甘來). 싸이버뱅크의 조영선 사장(40)과 제이텔의 박영훈 사장(36)에게 딱 어울리는 고사성어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신념 하나로 한눈 팔지않고 달려와 마침내 국내 개인휴대단말기(PDA)시장의 선두자리에 올라섰다. HP 팜 등 다국적기업은 물론 삼성전자 등 대기업의 공세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모두 전문경영인이다. 조 사장은 정문술 미래산업 회장이 투자한 싸이버뱅크의 설립 8개월만에 합류했고 박 사장은 제이텔이 실적악화로 기로에 섰던 1년전 구원투수로 영입됐다. 경영스타일도 비슷하다. 뚝심과 친화력으로 기업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인생행로는 판이하다. 조 사장은 벤처와 대기업을 전전하며 굴곡많은 역정을 걸어왔다면 박 사장은 어느날 갑자기 온실속에서 뛰쳐나온 케이스다. 조영선 사장이 싸이버뱅크의 CEO를 맡은 것은 1999년 8월부터다. PDA의 가능성만을 믿고 금호그룹 계열의 금호KD통신 사장직을 기꺼이 포기했다. 그는 기술개발에 힘을 쏟았다. 중소기업의 경쟁력은 틈새전략과 우수한 기술력에 있다는 확고한 신념 때문이었다. 덕분에 1999년말 컴덱스 쇼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아 "베스트어워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조 사장의 강점은 성실함과 리더십이다. 이를 가장 잘 드러내는 대목이 주식분배다. 고급 개발인력을 스카웃할 때 자신의 지분을 직접 헐었고 그나마 남은 지분마저 올초 우리사주조합에 모두 넘겼다. 거액의 적자 탓에 흔들리는 직원들에게 신뢰감과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서였다. 조 사장은 "사업의 목적이 축재(畜財)가 아니라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의 꿈은 세계 PDA폰시장을 석권하는 것이다. 박영훈 사장은 남부러울게 없던 샐러리맨이었다. 삼성물산과 삼성그룹 비서실에서 근무하며 탄탄대로를 걸었고 세계적 컨설팅업체인 부즈앨런&해밀턴과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는 베테랑 컨설턴트였다. 그러다 지난해 실적악화 등으로 휘청거리던 제이텔을 살려달라는 요청을 받고 선뜻 가시밭길에 발을 들여놓았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주변의 기대도 컸고 무엇보다 PDA시장이 예상밖으로 지지부진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마이크로소프트의 포켓PC 진영과의 싸움에서도 갈수록 밀리는 상황이었다. 운영체제(OS)를 독자 개발한 덕분에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장점이 있는데도 제품개발에만 치중한 나머지 마케팅이나 영업이 부진했던 탓이었다. 박 사장은 "핵심에 집중"하는 스타일이다. 일반PDA시장에 대한 미련을 과감히 떨쳐내고 PDA폰 개발에 힘을 쏟았다. PDA가 컴퓨터 전화 MP3플레이어 전자책 등의 복합기능을 갖춘 디지털 기기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믿음에서였다. 그의 판단은 적중했다. 일반PDA시장은 위축된 반면 이동통신사들의 적극적인 마케팅에 힘입어 PDA폰시장이 빠른 성장세를 탔기 때문이다. 박 사장의 꿈도 조 사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박 사장은 "기술력을 더욱 강화해 PDA가 한국의 전략수출상품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