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로(活路)를 찾아서

증시가 누적매물 소화과정을 전개하고 있다. 수급여건 개선, 기술적인 매수신호 발생, 뉴욕증시의 안정적인 흐름 등으로 투자심리가 나아졌지만 매물대 밀집구간을 단숨에 치고 올라가기에는 모멘텀이 부족하다. 증시는 공고해지고 있는 하방경직성을 발판삼아 에너지를 비축한 뒤 추가 상승을 도모할 전망이다. 급락에 대한 우려로 차익실현에 나서기보다는 조정 시 매수관점을 유지하는 전략이 바람직해 보인다. 당장 강력한 유동성 보강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만큼 투자자별 매수세의 선순환 유입가능성과 그에 따른 업종별 매기 확산에 무게를 두고 동참할 시점이다. ◆ 다시 경제지표로 = 종합주가지수가 지난 14일 이후 8거래일 동안 50포인트 가량 올랐다. 박스권의 정중앙인 650선에서 방향성을 두고 고민하던 종합지수는 위쪽으로 ‘선로’를 틀면서 60일선을 상향 이탈한 이후 700선 고지마저 탈환했다. 이라크와 미국의 전쟁위험 완화 등 국내외 여건이 다소 호전됐다. 그러나 장세를 견인할 만한 대형 호재나 모멘텀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수급여건 개선이 직접적인 원동력으로 지목된다. 외국인과 프로그램 매수세가 유입되면서 수급장세가 전개된 것. 이 같은 수급호전은 미국경제가 ‘더블딥’이나 디플레이션에 빠지는 최악의 국면에 접어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증거’가 나왔기에 가능했다는 지적이 많다. 소매판매, 경기선행지수, 신규 실업수당 청구자수, 기존주택 판매 등 경제지표가 예상보다 긍정적으로 집계되면서 낙관적인 신호를 보냈다. 지난달 중순 종합주가지수가 580선까지 추락하고 미국 나스닥지수도 1,100선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기대수준’을 상회한 3/4분기 기업실적이 바닥권에서의 전환점을 제공했다면 이번달 중순에는 ‘더 나빠지지 않은’ 경제지표가 종합지수 700선과 나스닥의 전 고점 돌파를 가능하게 한 셈이다. 월 말이 다가오면서 시장은 다시 주요 경제지표를 기다리고 있다. 이번주 미국에서 발표되는 경제지표는 증시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먼저 화요일에 발표되는 3/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잠정치는 건설지출 및 재고의 상향수정에 따라 추정치인 3.1%에 비해 개선된 3.8%로 관측된다. GDP 성장률과 더불어 11월 소비자신뢰지수와 10월 신규주택판매 등도 이날 나온다. 수요일에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베이지북, 주간실업수당청구 건수, 미시간대 소비자신뢰지수, 내구주문, 소매판매 등 굵직한 지표가 기다리고 있다. 한편 목요일 뉴욕증시는 추수감사절을 맞아 휴장한다. 주 중반에 집중된 이들 지표는 대체적으로 우호적인 수치가 예상되고 있다. 다만 뉴욕증시나 서울증시나 가격메리트가 어느 정도 감소한 상황에서, 추세전환을 위해서는 최악의 국면이 빠져들지 않았다는 것 이상의 계기가 필요하다. ◆ ‘프로그램 장세’ 이후 = 매수차익잔고가 급증하면서 최근 증시 상승세를 이끌어온 프로그램 매수세의 영향력이 감퇴했다. 오히려 2,700억원이 넘는 대규모 프로그램 매물이 출회되면서 종합지수를 조정으로 이끌었다. 프로그램과 외국인 매수로 시작된 수급개선이 개인, 일반법인 등으로 연결될지 주목된다. 상장지수펀드 도입 등으로 연말까지 배당을 노린 프로그램 매수세가 꾸준히 유입될 것으로 기대되지만 지난해 말과 달리 장기증권저축 펀드와 관련된 자금 유입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 이 같은 효과를 상쇄시킬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주와 같은 강력한 프로그램 매수세 유입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그러나 프로그램 매수세가 주춤해진다고 해서 급격한 매물 출회와 그에 따른 충격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방경직성이 확보된 상황에서 대기 매수세 또한 만만치 않은 점을 감안할 때 프로그램 매물의 영향력은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프로그램 매도에 대한 부담을 빨아들이고 장세를 들어올릴 뚜렷한 매수주체가 부각될 공산은 크지 않은 실정이다. 다만 하방경직성을 전제로 외국인, 개인, 일반법인 등으로 연결되는 ‘릴레이식 수급 선순환’이 전개될 가능성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지난달 종합지수가 저점을 형성한 이후 꾸준히 주식비중을 늘리고 있는 외국인이 올 들어 처음으로 두 달 연속 매수우위를 나타내고 있다. 외국인 매수는 여전히 삼성전자 등 전기전자업종에 집중된 양상이지만 최근 현대차 등으로 ‘입질’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 포착되고 있다. 또 개인 자금 유입에 대한 기대도 만만치 않다. 개인이 8일만에 은행, 전기가스주를 중심으로 매수우위를 나타낸 것. 개인은 유동성, 낙폭과대, 배당 등을 기준으로 매수세에 시동을 걸었다. 때마침 고객예탁금이 9조원을 회복했다. 개인 매수세 유입은 특히 중소형주로의 매수세 확산과 직결된다는 측면에서 의미를 갖는다. 기업의 자금 여력이 풍부한 점이 수급 선순환에서 한 축을 담당할 것이라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올해 순이익이나 현금유동성 증가에 비해 불투명한 경기전망 등으로 실물자산에 대한 투자가 마땅하지 않은 기업이 자사주 매입 등의 방법을 통해 주식 수요처로서 비중을 높여갈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다. 한경닷컴 유용석기자 ja-j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