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삶을 찾아준 '접촉사고' .. '체인징레인스'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고 필요에 따라 자신의 색깔을 바꾸는 중산층의 위선. 해를 끼친 타인에게 앙갚음해야 직성이 풀리는 하층민의 위악. 삶의 행로에 마주치는 이 불화들은 인간사의 영원한 숙제다. 로저 미첼 감독의 휴먼드라마 "체인징레인스"(Changing Lanes)는 다른 길을 걸어온 두 사람이 우연한 사고로 얽힌 뒤 지난 날의 위선과 위악을 참회하고 새 삶을 기약하는 이야기다.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이 정교한 각본,정련된 연기를 통해 수면위로 떠오른다. 전도양양한 젊은 백인 변호사 게빈 베넥(벤 애플랙)은 운전중 차선을 바꾸려다 알코올 중독자이자 보험외판원인 하층민 흑인 도일 깁슨(새뮤얼 잭슨)의 차와 접촉사고를 낸다. 이들은 사고로 인해 중대한 일을 그르친다. 베넥은 수백만달러의 소송에 필요한 증거서류를 제출할 예정이었고,깁슨은 자녀의 동거양육권 소송에 참석할 계획이었다. 둘은 서로를 가해하면서 수렁에 빠져든다.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사소한 행동이 커다란 화로 돌아 오거나,자신의 잘못을 타인의 책임으로 전가시키는 행위에서 두 주인공들은 과거를 성찰한다. 제목의 "차선변경"은 두 사람의 "인생전환"이란 중의적 의미가 담겨 있다. 또한 두 캐릭터는 미국의 흑백인종차별과 빈부격차 문제를 집약하고 있다. 부유한 집안의 사위이자 변호사인 베넥은 풍요롭지만 위선적인 생활에 적응하고 있다. 학창시절 "정의의 수호천사"를 다짐했건만 현재의 그는 타인을 기만해 돈버는 도구로 법을 이용하고 있다. 변호사인 장인은 죽어가는 노인 의뢰인에게 재산을 자신에게 상속토록 유도했고 베넥은 그 유언장을 법원에 제출하려했던 공모자였다. 장인과 베넥이 혼외정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장모와 베넥의 부인은 알고 있지만 안락함을 제공받는 대가로 눈감아 줬다. 중산층 백인 가정의 평온함은 기실 허위에 불과하다. 반면 양육권소송에서 패소한 탓을 베넥에게 돌리는 깁슨은 사회적 부조리를 백인탓으로 여기는 미국 흑인을 대변한다. 하지만 깁슨은 관용이 부족해 계속 말썽을 일으켜 부인으로부터 이혼요구를 받았다. "노팅 힐"로 일약 스타감독의 반열에 오른 로저 미첼은 스릴러적인 장치를 가미해 긴박감을 안겨준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