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申相民 칼럼] 예비내각 밝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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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한 사람이 재임기간중 대통령을 몇번이나 만난다고 생각하느냐."
장관도 지냈고 청와대 수석비서관도 거친 분이 며칠전 점심자리에서 던진 화두(話頭)다.
국무회의 등 참석자가 20∼30명은 돼 긴밀한 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만남'은 빼고 대통령과 대화가 가능한 기회를 장관으로 있으면서 몇번정도 갖는다고 생각하느냐는 게 그의 질문이었다.
정답은 물러날 때까지 단 한번도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하는 장관이 거의 전부라는 것.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그렇게 단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말하기를 꽤나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전두환씨 이후 대통령 일정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한 연일 빈 시간없이 빡빡하게 짜여진다는 얘기다.
대통령이 때로는 한가하게 사색할 여가도 있어야 할텐데,실제로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장관이 어느날 갑자기 대통령을 독대하자고 나설 수 있는 분위기는 애당초 아니라는 것.
바로 그래서 대통령과 '속내'를 털어놓고 얘기할 기회도 갖지 못한 채 물러나게 되는 장관이 한둘이 아니라는 얘기다.
취임전에는 장관이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하도록 하겠다고 밝히지만,실제로는 반년이 멀다고 '장관들의 행진'을 연출하는 것도 따지고보면 장관이 대통령을 만나기도 어렵게 돼있는 풍토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었는데,새겨 들을 만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정당과 정치 현실에 비추어 대통령당선자가 공동운명체적 유대가 없는 테크노크라트를 장관으로 기용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바로 그런 대통령과 장관의 관계가 시간이 가더라도 만나기도 어렵고 그래서 별로 깊어지지도 않는다면 장관이 무게를 가질 수 없을 것은 당연하다.
잦은 경질도 그래서 나올 수 있지만,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대통령과 장관의 '간격'을 이른바 얼굴 없는 실력자들이 파고들게 된다는 점이다.
이 정권 들어 빚어진 숱한 비리는 그런 역학관계의 산물이 아니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너무도 두드러진다.
미국의 경우 장관이 비서라는 뜻인 세크러테리로 불리지만,어쨌든 장관이 대통령을 수시로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할 수 있다면 '호랑이인양 행세하는 여우'들의 장난은 훨씬 줄어들게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들의 바람일 뿐 다음번 대통령때도 그렇게 될 가능성은 냉정히 말해 높지 않다.
'자갈치시장을 활성화시키겠다'는 등 구청장 후보에게나 어울리는 소리들을 하고 다니면서,집권할 경우 기용할 장관들의 명단을 왜 밝히지 않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내각책임제가 아니라 대통령제이기 때문에 섀도 캐비닛을 밝힐 필요가 없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집권말이 되면 대통령이 탈당을 하는 게 정형화된 이상한 나라이기는 하지만,언필칭 정당정치를 하는 이상 예비내각명단을 밝히는 것이 책임있는 정당의 자세다.
다음번 대통령 아래서는 장관들이 장관다워야 한다.
'장관다운 장관'은 개인적인 능력이라는 측면에서도 그러해야 한다는 얘기도 되겠지만,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장관다운 예우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통령을 한번 만나기도 어려운 장관,1회용 반창고인양 분위기 쇄신을 위해 언제라도 비꿀 수 있는 장관은 더이상 바람직하지 않다.
장관의 경량(輕量)화에는 정부 과천청사도 한 몫을 했다고 봐도 큰 잘못이 아니다.
거리가 떨어져 있는 만큼 대통령을 만나는 빈도가 이래저래 줄어들게 마련이고 그래서 장관이 왜소화됐다고 한다면 말을 위한 말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차관급 수석비서관이 장관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기 시작한 것은 분명히 과천시대 이후다.
정부의전서열에 따라 승용차번호가 매겨졌지만 실제 장관들의 권력서열은 승용차번호에 1백번을 더해야 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 것도 역시 그렇다.
노무현 후보가 행정수도를 지방으로 옮기겠다고 공약하면서 이런 점도 생각해봤는지는 의문이다.
어쨌든 한가지 분명한 것은 장관이 대통령을 만나기 어려워지면 어려워질수록 갖가지 문제가 빚어진다는 점이다.
'분권형 권력구조'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의 폐단을 막기 위해서도 장관들의 무게를 더하게 해야 한다.
또 그렇게 하려면 집권후 내각명단을 지금 밝히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통령과 진퇴를 함께 할 사람들이 장관이 되고,그래서 장관이 언제 어느 때든 대통령을 만날 수 있고 때로는 노(No)라고 말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생각해봐야 한다.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