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MS와 한컴의 경쟁'

최근 만난 한 정보기술(IT) 전문가에게 왜 컴퓨터 바이러스나 해킹이 증가하는지 그 이유를 물었더니 다소 엉뚱한(?) 해석을 내놓았다. 어떤 플랫폼이나 애플리케이션이 지배하는 획일화된 환경이 되면 공격의 유혹도 커진다는 것이다. 일리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경쟁'은 사이버 위협에 대응한다는 전혀 다른 목적에서도 필요하겠구나 싶었다. 며칠 전 미국 볼티모어 법정에서는 재미있는 논쟁이 벌어졌다. 선마이크로시스템스와 마이크로소프트(MS)간의 소송과 관련해서다. 여기서 프레드릭 모츠 판사가 MS의 행위를 묘사한 대목이 단연 화제가 됐다. 그는 MS의 행위를 피겨스케이팅 역사의 오욕 중 하나인 낸시 캐리건에 대한 폭행사건에 빗댔다. 이것은 지난 94년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토냐 하딩의 남편이 그녀의 올림픽 출전을 위해 숙적인 낸시 캐리건을 공격한 사건이다. MS는 물론 모든 것을 합법적인 경쟁을 통해서 획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이 맞다면 한 가지 분명한 것은 MS가 경쟁이 보장된 환경의 최대 수혜자라는 점이다. 지금은 경쟁 보장을 요구하는 수많은 경쟁자들을 방어해야 하는 다른 입장이 됐지만 말이다. "독재 아냐, 한 명뿐이라면." 이것은 무슨 대선과 관련한 정치구호가 아니다. 한글과컴퓨터(이하 한컴)가 '한컴오피스2003'을 출시하면서 MS의 오피스 프로그램 시장 독점을 겨냥한 광고 포스터다. 지금 MS와 한컴간 소프트웨어 가격인하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MS는 '한컴오피스2003' 출시 하루 전날 이례적으로 큰 폭의 할인판매를 시작했다. MS는 한컴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그리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번 한컴오피스2003은 표계산 프로그램인 '넥셀'을 탑재한 것이 특징인데 이 개발 소식이 알려졌을 때도 MS는 경쟁프로그램 '엑셀'의 가격을 인하한 바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 워드프로세서 시장에서 MS가 어떻게 나왔는지를 상기해 보더라도 상관없다는 주장의 근거는 약해진다. 국내 소비자들로서는 좋은 기회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좋은 일도 그냥 일어나는게 결코 아니다. 지금 국내에서 팔리는 MS워드의 가격은 미국보다 2.4배 낮지만, MS엑셀은 미국보다 1.5배 MS오피스는 1.3배 각각 높다고 한다. 이런 가격구조가 국내 경쟁상황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은 긴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새로운 경쟁이 시도된다는 것 자체가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이렇게 달라진다. 경쟁을 아예 엄두도 못내는 상황이 어떠할지는, 그렇다면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여기서 토종이니 외국산이니 구분하려 들 필요는 없다. 그런 것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다고들 하니 말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어쩌면 선행돼야 할 글로벌 스탠더드가 있다. 토종이든 외국산이든 새로운 도전이 일어나는 경쟁환경, 시장지배력을 이용한 불공정 경쟁행위는 엄두도 못내는 경쟁환경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