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말많은 통신산업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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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업계 최고경영자 12명이 참석한 가운데 6,7일 서귀포 롯데호텔에서 열린 '통신사업자 CEO포럼'은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출혈경쟁 속에 사사건건 충돌을 일으킨 대형 통신업체의 CEO가 사상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인데다 중장기 정보통신 정책 방향과 비전이 논의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실제 예정보다 한 시간 늦게 토론이 끝날 정도로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지만 CEO들의 관심사는 '미래'보다는 '현실'이었다.
후발사업자들은 생존 자체에 위협을 느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며 선발업체를 강력히 규제해 달라고 촉구했다.
선발업체들은 성장의 한계에 직면했기 때문에 규제를 풀어 시장의 파이를 키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지어 "아예 죽이려면 일찍 죽이든지…"(후발업체 관계자), "무조건 태어났다고 끝까지 장수해야 하느냐"(선발업체 관계자)라며 장외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장기 정책 방향이나 언제 어디서도 접속 가능한 네트워크를 만들겠다는 'U(유비쿼터스.Ubiquitous) 코리아' 비전은 토론의 대상에서 밀려났다.
당장 어떤 규제와 어떤 정책이 필요하다는 논의만 빗발쳤다.
이런 갈등의 원인으로 선.후발 사업자간 격차 심화, 새로운 성장엔진의 부재 등이 꼽힌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정부의 규제와 관련돼 있다는 지적이다.
통신산업은 공공재란 특성상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규제산업에 속한다.
규제가 광범위한데다 수단도 강력하기 때문에 정부가 마음 먹으면 얼마든지 업계 판도를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현 정부 들어서만 정보통신부 장관이 다섯번 바뀌었고 실무자들의 이동은 더 잦았다.
사람이 바뀌면서 생각도 바뀌고 정책도 달라졌다.
사실상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사람들의 자리이동에 업계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미래보다는 당장 하나라도 더 얻어내는게 최고의 전략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업계는 '국민편익' '공정경쟁'같은 추상적인 목표보다 구체적이고 일관된 방침을 정부가 정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정보통신 규제도 이제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김남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