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금혼학칙 논란

이화여대가 우리나라 여권의 요람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이화의 역사를 보면 그 존재가 더욱 두드러진다. 학교가 설립된 1886년은 여자들이 쓰개치마로 얼굴을 가리고 바깥출입을 했던 시기로,남성도 접하기 힘든 신교육의 기회를 여성이 가진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변화였다.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시련도 많았다. 고종이 하사한 '이화(梨花)학당'이라는 이름이 민족적 색채가 강하다 해서 경성여자전문대학으로 격하됐고 이름까지도 바꾸어야 했다. 해방과 함께 교명을 되찾기는 했지만 정치·사회적 격동기가 지속되면서 이화여대도 그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국내 최고의 여자대학으로 지금의 탄탄한 토대가 마련된 것은 60년대 들어서였다. 여성인재를 배출하고 여권신장의 첨병노릇을 해온 이화여대가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를 받고있다는 소식이다. 기혼자에게 입학 및 졸업은 물론 편입학을 금지한 학칙이 평등권에 위배되는지가 조사목적이라고 한다. 결과는 두고볼 일이지만 과거에도 결혼금지가 학내에서 종종 문제가 됐고,시대착오적인 조항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던 터여서 특히 관심이 크다. 여성의 경우 기혼자는 사회활동에서 불이익을 강요 당하던 시절이 있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결혼을 하면 직장에서 당연히 퇴직하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여권신장이 중요한 이슈로 등장하고부터는 기혼과 미혼의 벽이 무너지고 있는 게 세계적인 추세이다. 이화여대의 '재학 중 결혼금지'는 개교 당시 조혼풍습으로 인한 여성들의 학업중단을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여성 학업권보장' 조항이었던 셈인데 당초 의도와는 달리 이제 와서는 차별없이 교육 받을 개인의 권리를 제한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화여대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총장을 선임할 때 3개의 불문율(이대 출신,기독교인,미혼)을 적용했으나 지난 96년 장상 총장이 취임하면서 그 전통이 깨졌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 관계없이 학교당국이 금혼조항을 신중히 재검토할 시점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