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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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께서 동지제를 올린 다음 종가(鐘街)에 들러 공계원(貢契員)과 시장상인의 어려움을 물은 뒤 명했다. '동지는 새해와 다름없다. 공계원과 시장상인을 구제할 방안을 소상히 강구하도록 하라.'"(조선왕조실록.정조 6년)
우리 선조들은 이처럼 동지(冬至)를 새해의 시작으로 여겼다.
이날을 기점으로 남쪽으로 내려갔던 태양이 다시 올라와 낮이 길어지는 만큼 '양(陽)'의 기운이 싹트는 날이라고 믿은 까닭이다.
궁중에선 '아세(亞歲)',라 해서 종묘에 제사하고 연회를 열었다.
또 관상감에서 만든 달력에 '동문지보(同文之寶)'란 어새를 찍어 문무백관에 나눠주면 받은 사람은 이를 다시 친지들에게 보냈다.
여름엔 부채, 겨울엔 달력을 교환한다는 뜻에서 생긴 말이 '하선동력(夏扇冬曆)'이다.
동짓날에 맞춰 멀리서 진상품을 가져온 이들을 위해 임시 과거(黃柑製)를 실시하기도 했다.
일반에서도 '작은 설'로 불러 기렸다.
새해의 나이만큼 새알심을 넣은 동지팥죽을 쒀 문에 뿌린 후 이웃과 함께 먹고, 악귀를 막기 위해 뱀 '사(蛇)'자 부적을 벽이나 기둥에 거꾸로 붙였다.
또한 이날 전에 묵은 빚을 청산하고 깨끗한 새날을 맞기 위해 애썼다.
정조실록엔 이런 기록도 있다.
재위 22년 동지에 칠원 현감 박명섭이 올린 상소에 대한 답변이다.
"오늘은 동짓날이다. 선조들께선 이날 윤음을 내려 백성을 편안하게 할 방책을 물었다. 나는 이를 따르지 못해 두려운 마음으로 안절부절 못했다. 너의 상소를 읽어보니 백성들의 고통에 대해 상술했다. 네가 아는 건 작은 고을이니 얼마간 폐단을 바로잡은들 큰 도움이 되겠는가. 그러나 조금이라도 구제한다면 허송세월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올린 여러 조항에 대해선 모두 묘당에 넘겨 즉시 분명하게 회계하게 해 혹시라도 책임이나 때우려 한다는 탄식이 없도록 하겠다."
16대 대선도 끝나고 내일 모레면 동지다.
대통령 당선자와 일반 국민 모두 들뜬 마음에서 벗어나 차분히 '팥죽 쑤고 달력 나누고 주위와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서 새각오를 다지던' 동지의 의미를 되새겼으면 싶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