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시대-21세기 첫 선택] '한국號' 새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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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환호도 한 순간, 길고 치열했던 선거전으로 지친 몸을 추스릴 여유도 없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앞에 주어진 막중한 과제는 한 둘이 아니다.
선거운동으로 사분오열된 국론을 월드컵 때의 드높은 함성처럼 하나로 끌어모아야 한다.
국가 경쟁력을 튼실하게 다지고 키우기 위한 시장경제 시스템의 완성은 노 당선자에게 가장 중요한 화두(話頭)가 돼야 한다.
북한의 핵 개발로 난관에 부딪친 남북한 협력관계와 미국 등 주요 우방국들과의 긴밀한 유대관계 재구축 등 대외 과제도 산적해 있다.
시장중심의 구조조정과 안정적인 노사관계 확립, 정치 개혁과 부패 척결, 정부조직.공기업 혁신과 기업들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시장 메커니즘의 재정비, 학교교육 정상화와 청년실업 해소, 수도권 과밀과 도농(都農) 등 계층.지역간 격차 해소 등 노 당선자가 당장 해결책을 구상하고 실천에 옮겨야 할 '숙제'들이 줄지어 있다.
선거기간 동안 그가 제시했던 온갖 공약들을 이젠 대통령 당선자로서 원점에서부터 하나씩 다시 살펴봐야 한다.
무엇보다도 시장 경제의 첨병인 기업들의 사기와 의욕을 행여라도 꺾는 공약이 있었다면 냉정하게 다시 정책을 구상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표심(票心)'을 겨냥한 장밋빛 공약들은 재정에 무리한 부담을 주지 않는 테두리 내에서 우선 순위를 짜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권고한다.
최영휘 신한금융지주회사 부사장은 "하루빨리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 경제부문의 선결 과제"라며 "그래야만 잔뜩 위축돼있는 투자도 되살아나고 경제가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부사장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지역별, 세대별, 계층별 대립구도가 심화됐다"며 "국민들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고 치유하는 국민통합의 지도력 발휘가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최흥식 금융연구원 부원장은 "새 대통령은 관(官) 중심이 아니라 '시장중심'이 되도록 '시장기반 조성자' 역할에 충실해야 할 것"이라며 "남북통일시대에 대비해 통일 재원을 마련하고 고령화 사회에 대응해 사회 전체의 자산건전성을 높이는 일도 중요하다"고 권고했다.
최 부원장은 이밖에도 구조조정에 따른 산업공동화 방지 가계부채 급증 및 자산시장 버블화 대책 산업.금융의 양극화 해소 저축률 높이기와 중장기 재정확충 등을 노 당선자의 시급한 과제로 제시했다.
송자 대교 회장(전 교육부 장관)은 "기본적으로 백년대계를 내다볼 교육 정상화가 큰 과제지만 당장은 SOFA(한미주둔군지위협정) 개정 문제로 불거진 한.미 관계의 재정립과 개선이 현안"이라고 지적했다.
송 회장은 "한국 같이 분단된 나라는 안정이 중요한 만큼 새 지도자는 더불어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회안정을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교육이 제 자리에 서도록 해 고급 인력이 해외로 유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새 대통령에게 '3대 당면 과제'가 주어졌다고 분석했다.
문 교수는 "당장 북한의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하고, 최근 사회 일각에서 반미감정이 고조되면서 흔들리고 있는 전통적인 한.미 관계를 정상궤도로 올려야 하며, 중장기적으로 한국의 위상에 대한 국가전략 구상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외교와 대북정책에서 초당적.거국적인 대처는 대통령만이 유도해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광은 한국외국어대 교수(무역학과)는 "신(新)탕평책으로 인물을 고르게 발탁해 사회통합을 이뤄야 한다"며 "엘리트 교육에 적극 나서 사회엘리트를 육성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노 당선자는 이 모든 국가적 과제들을 국회의석의 과반수가 넘는 거대 야당을 상대로 한, '소수 정부'의 대통령으로서 감당해 나가야 한다.
갈등 조정자와 중재자로서 국민과 야당을 함께 설득해 나갈 지도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이유다.
허원순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