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이민 1백년

1903년 1월13일 새벽.증기선 갤릭호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하와이에 도착한 1백2명의 한국인은 곧장 사탕수수농장으로 향했다. 한국 최초의 미국이민자인 이들은 지금의 '아메리칸 드림'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긋지긋한 가난을 떨쳐보려고 이민선에 몸을 실은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쫓기듯 이민선에 올라탔던 당시 구한말의 한반도는 일본 청나라 러시아 등 열강들의 각축장이었고,조정은 외세에 줄을 대느라 사분오열돼 민생은 뒷전이었다. 게다가 여러 해 흉년까지 들어 살림은 말이 아니었다. 때마침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에는 일손이 모자라 아우성이었는데,농장주들은 미국공사였던 알렌과 선교사 존스에게 부탁해 고종황제로부터 이민허가를 얻어냈다고 한다. 한국인 이민은 을사보호조약으로 외교권이 박탈된 1905년까지 65차례에 걸쳐 7천2백여명이 하와이에 도착해 노예처럼 일했다고 하는데 한일합방 이후에는 돌아갈 고국마저 없어 어쩔 수 없이 그곳에 정착해야만 하는 신세가 됐다. 소위 '사진결혼'은 그때 유행했다. 조선 처녀들은 중매쟁이가 준 사진 한장을 달랑 들고 꿈에 부풀어 하와이로 달려갔으나 반겨주는 건 늙은 노동자와 고된 노동뿐이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하와이 이민자들은 악착같이 돈을 모아 자녀교육에 힘썼고 독립공채 인수를 위해 거액의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기도 했다. 사탕수수밭에서 시작된 '이민역사 1백년'은 수많은 곡절의 연속이었지만,이제는 미국 주류사회의 일원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다. 교포수만 해도 2백만명이 넘어 아시아국가에서는 중국 필리핀 인도에 이어 네번째이다. 직업도 단순직종에서 벗어나 변호사 의사 애널리스트 등 전문직종 종사자들이 크게 늘고 있으며 연방정부나 주정부의 고위직에도 이민 후세들이 다수 진출해 있다. 교포사회는 이민 1백주년이 되는 13일을 앞두고 새해 벽두부터 학술대회 음악회 등 각종 기념행사로 분주하다는 소식이다. 가난을 떨치고자 고국을 떠났던 이민자들의 후손들이 이민 2세기를 맞아 자신들의 삶을 어떻게 가꾸어 갈지 기대된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