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위험한 反시장적 발상 .. 趙東根 <명지대 교수.경제학>

"재벌기업 구조조정본부의 존치 여부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필요한 경우 해체를 권고할 수도 있다"는 요지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관계자 발언이 있었다. 그는 검토의 명분으로 IMF위기 때 구조조정본부가 발족된 이래 그 역할에 대한 평가가 없었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구조조정본부가 그룹계열사 구조조정이라는 본연의 업무보다 사실상 재벌총수의 비서실 기능을 하면서 부의 편법·부당 세습을 주도하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리고 이 관계자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도 이러한 변칙 세습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파장이 커지자 인수위는 '진의가 잘못 전달된 것으로 공식견해가 아니다'라면서 한발 물러섰고,본인도 해명했다. 그러나 이같은 인식이 인수위 저변의 기류라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어찌됐건 이는 '사(私)기업'의 경영조직에 대한 간섭으로,반(反)시장적인 위험한 발상이기 때문이다. 일정규모 이상의 기업은 경영상태를 판단하고 기업전략을 세우는 등의 역할을 수행하는 '중추신경조직'이 반드시 필요하다. 기업이 처한 형편에 따라 신경조직의 명칭과 형태가 다를 뿐이다. 우리의 재벌은 시장과 단일기업의 중간에 위치한 '혼합조직'이기 때문에 그룹차원의 재무관리, 사업진출, 사업 및 투자조정, 경영진단, 위기대응 등의 기능을 포괄적으로 통할하는 조직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그룹의 필요와 판단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구조조정본부를 부정하거나,그 타당성을 제3자가 평가하겠다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또 IMF 위기 당시 그룹의 비서실이 문제가 됐던 이유는 총수의 권한행사와 법률적 책임간의 비대칭이었지,비서실 기능 그 자체는 아니었다. 혹여 비서실을 대체한 구조조정본부에 순기능과 역기능이 공존한다면,그 역기능을 시장시스템이나 다른 제도를 통해 교정해야지,구조조정본부 자체를 문제시하는 것은 바람직한 접근이 아니다. 인수위가 당선자의 공약사항과 직접적으로 관계 없는 기업조직의 문제인 사영역에까지 관여하는 것도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인수위는 말 그대로 대통령직을 인수하기 위한 실무준비위원회여야 한다. 그러나 이번 일로 인수위는 국민에게 정책위원회로 비쳐졌다. 사기업의 경영조직에 관여하는 것이 인수위의 업무분장 범위 밖이라면 이는 시장경제의 근간인 법치를 허문 것이다. 증여와 상속에 관한 완전포괄주의도 위험요소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일부 재벌의 변칙적인 부의 세습은 엄밀한 의미에서 탈법이라기보다는 '법망'을 피한 것이다. 예컨대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과 비상장 기업주식매각을 통한 부의 상속을 들 수 있다. 변칙이 가능했던 이유는 당국이 재벌의 절세 기법을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해법은 구조본의 손질과 완전포괄주의 도입 같은 강수 이전에 기업윤리를 앙양시키고,법망을 촘촘히 하며,금융감독을 강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윤리경영도 기업경쟁력의 한 요인이기 때문에 일정부분 시장의 처벌기능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상속 및 증여행위를 광범위하게 포착하고 있다. 세법에 열거된 상속·증여행위에 대해 과세하는 '열거주의'를 기본으로 하지만,법에 열거된 것과 유사한 상속·증여행위에 대해서도 과세하는 '유형별 포괄주의'로 이를 보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완전포괄주의는 '사실상의' 상속·증여 모두에 과세하는 것으로,이 기준에 따르면 부모가 자식에게 혼수를 마련해 주는 것도 과세대상이 된다. 상속과 증여는 정당한 재산권 행사다. 따라서 일부 재벌을 겨냥한 완전포괄주의는 재벌과 무관한 중산층의 정당한 재산권 행사를 침해할 수 있다. 재벌의 반칙과 변칙은 시정되어야 하나,재벌을 염두에 둔 차별적 규제는 그 해법이 될 수 없다. 하이에크가 설파했 듯이 정책은 '원칙'의 문제이지 특수목적을 위한 '편의'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재벌문제에 대한 접근이 일반적 시장원칙에 따라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dkcho@mju.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