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책과 함께] 사랑, 결혼, 가족...진정한 의미를 아는가

사랑과 결혼,가족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룬 외국문학 2편이 오랫만에 번역돼 나와 눈길을 끈다. 이스라엘 작가 체루야 살레브의 "모독"(푸른숲,서유정 옮김,전2권,8천원)과 일본 작가 무라카미 류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가족"(웅진닷컴,양억관 옮김,8천원)이 그것. "모독"은 큰 어려움 없이 30여년을 살아온 한 여성의 일탈적 연애를 통해 고통스럽고도 감미로우며 때로 사람을 위험한 곳으로 내모는 사랑의 양면을 그린 소설이다. 서른살의 평범한 여주인공 야아라는 아버지의 젊은 시절 친구 아리에를 만나면서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진다. 성실하고 정직한 남편 요니를 가졌지만 아리에를 본 순간부터 야아라는 그의 오만과 계산된 무관심에 분노와 흥분을 함께 느낀다. 아리에에 대한 무조건적인 감정은 지금까지 쌓아왔던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와해시키고 만다. 소설은 얼핏보면 불륜소설의 외양을 띠고 있지만 작품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메시지는 보다 중층적이다. 표면의 미친듯한 사랑,모든 걸 파괴해가며 감행한 사랑은 주인공 야아라가 새로운 유형의 삶을 개척해 가는 지난한 투쟁이었음을 독자들은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비로소 눈치채게 된다. 뉴욕타임스는 "노골적인 성적 묘사와 성서적 암시,심리학적 통찰로 가득한 이 소설은 모든 한계를 넘어섰다. 여성독자라면 이 이야기에 본능적인 일체감을 느낄 것이며 남성독자라면 고삐풀린 섹스의 생생한 묘사에 흥미를 느낄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지상에서의 마지막 가족"은 오늘날 해체되고 있는 "가족"의 의미를 실업등 현대산업사회에서 대두되고 있는 여러문제들과 접목시켜 가감없이 드러낸 작품이다. 소설은 주인공 우치야먀 가족이 이런 저런 이유로 붕괴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일 때문에 따로 떨어져 살게 되고 자식들도 제각기 독립한다. 그런 가족의 붕괴와 구성원의 독립은 작품속에서 긍정적으로 묘사된다. 가족이 개인의 독립된 삶과 가치실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지 않느냐는 문제도 제기된다. 작가는 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가족이라는 이름은 과연 행복할까. 가족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까. "구원하는"또는 "구원받는다"는 인간관계는 가능할까. 무라카미는 가족구성원인 개개인이 독립되지 않고서는 건강한 가족도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전통적 의미에서의 의존적이고 희생적인 가족은 마지막이라는 의미에서 소설의 제목도 이같이 지었다. 다소 무거운 주제를 작가는 경쾌한 글솜씨로 무리없이 풀어나간다. 일본에서는 출간이후 베스트셀러를 기록했으며 TV드라마화 되기도 했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