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帝王'은 없다..姜萬洙 <디지털경제硏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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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가 끝나고부터 여야당 모두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정당개혁을 중심으로 정치개혁을 추진 중에 있다.
승자나 패자 모두 무언가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의 조류를 느끼는 것 같다.
지금까지의 정당개혁은 물갈이나 신장개업 수준이었으나,이번에는 새로운 시대의 조류를 타지 못하면 2004년 총선에서 패배하고,정국의 주도권을 놓치리라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모든 것이 풍요해 품질은 좋아지고 가격은 떨어지는 디지털시대에 하루 24시간밖에 없는 인간의 '관심(attention)'은 희소성의 원칙에 따라 비싸만 간다.
인터넷세대는 논리보다는 느낌(feel),유익보다는 재미(fun)가 있어야 관심을 끈다고 한다.
분노를 느끼는 데는 3초,슬픔에 젖어드는 데는 10초,사랑에 빠지는 데는 30초가 걸린다고 한다.
그들의 표현대로 '필이 꽂혀야' '펀이 짱이어야' 감동을 주고 관심을 끌 수 있다.
대통령선거전이 중반에 들었을 때 "노무현이 왜 뜨는지 모르겠다"고 누군가 말했다.
"고졸에 독학으로 변호사가 되고 대통령 후보까지 된 노무현 자체가 서민에게는 꿈이요,'필'이 꽂히는 상품이다"라는 것이 대답이었다.
당원 아닌 국민도 참여한 경선으로 '펀'을 주고 후보단일화로 더했다.
2030세대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끌어냈고,그들은 당이 흔들릴 때 그 자리에 '노사모'로 모이고,'희망돼지저금통'을 들고 나와 새로운 정치판을 벌였다.
상대 캠프의 뻔한 경선은 재미가 없었고,포장 하나 바꾸지 않고 내 놓은 '이월 재고상품'은 인터넷세대에게 느낌이 꽂히지 않았다.
"수도를 대전으로 옮기면 서울 집값이 떨어진다"는 말에서는,집값 떨어지기를 바라는 절대다수 서민은 안중에 없고,'수구(守舊)'의 냄새까지 풍겼다.
이 정부의 실책인 아파트값 폭등을 공격하기는커녕 두둔하는 우까지 범했다.
재미와 느낌이 인터넷세대의 관심을 끌어냈고,관심에 끌려온 자원봉사자들이 '동원된 당원'을 이기고 월드컵 4강같이 꿈은 이루어졌다.
인터넷에 연결된 세대와 격리된 세대를 갈라놓는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가 우리에게 현실화되었다.
지금까지 우리의 대통령은 대통령제 중 강한 대통령과,내각제 중 강한 당총재를 합친 '제왕'이었다.
행정부 인사권뿐만 아니라,국회의원 공천권과 함께 정치자금까지 쥐어 못할 것이 없었다.
'제왕'의 뜻이 당론이었고,당론 따라 국회에서 이탈 없는 표결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당권을 놓아버린 대통령은 이미 '제왕'이 아니다.
'제왕'이 되기 위해 당권을 되찾아오는 것도 분권시대로 가는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라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러면 '제왕'적 대통령·총재와 '제왕'적 국회의원·위원장의 친위조직 역할을 하는 비효율적인 거대한 중앙당과 지구당의 재편은 불가피한 상황이고,'동원된 당원'을 두고는 공정한 경선이 이루어질 수도 없고 자원봉사자 조직이 살아나기도 힘들다.
당권 없는 대통령이 이끄는 행정부보다 국회가 우위에 서고,원내총무 중심의 원내정당이 되는 것도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연한 귀결이 될 것이다.
투표율은 계속 떨어지는 상황에서 정책으로 관심을 끄는 정책정당이 아니면 버티기도 힘들어 질 것이다.
공천권도 없고 정치자금도 놓은 '제왕'이 아닌 대통령은 정책으로 국민을 감동시켜 여론을 업는 길 이외에 기댈 곳이 별로 없고,대화와 설득으로 국회의 협조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 여야 상하원의원들에게 전화를 걸고 백악관에서 조찬을 하며 대화하고 설득하던 정치가 머지않을지도 모른다.
당분간은 과거의 관성으로 당권 없는 대통령이 정치를 주도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국정수행 여건은 역대 정권중 가장 어려울지 모른다.
어떤 인수위원이 주장한 '핵심 리더 1만명 양성론'은 일면 이해가 된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정치개혁이 어디로 갈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제왕'이 없는 정치판에서 이미 변화된 조류와 상황에 적응하는 것은 불가피할 것이고,구닥다리 당의 밀실 공천으로는 '필이 꽂히는 신상품'의 생산이 어렵다는 것이다.
'필'과 '펀'이 없는 정치개혁으로는 2004년 총선에서 느낌도 못 주고 재미도 없을 것 같다.
mskang36@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