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3일자) 복지와 분배, 문제는 재원이다

노무현 새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해 적지않은 우려가 있었던 것은 당선자의 '복지와 분배 우선' 정책이 자칫 과도한 비용요인을 누적시킨 끝에 우리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훼손하지나 않을까 하는 것 때문이었다. 어제 인수위가 발표한 '사회 여성분야 정책 과제'들은 바로 그런 우려를 증폭시키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현대 국가의 당연한 의무라는데 대해서는 반론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어떤 복지정책도 결국에는 재원의 뒷받침이 있고서야 가능하다고 본다면 어제의 발표 내용은 우리 현실에서 다소 앞서나간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갖게 된다. 건강보험 문제만 해도 그렇다. 국가가 생애주기별 건강서비스를 제공하고 중증환자 등에 대해 본인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정책목표는 나무랄 데가 없다고 하겠지만 지금도 재정적자에 허덕이는 의료재정 형편으로 그것이 얼마나 가능한지 궁금하다. 과잉진료와 의료비 부당청구를 막아 재원을 확보한다는 계획이 충분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기초생활보장을 차상위계층까지 확대하고,근로소득 공제액이 납입소득세보다 많을 경우 초과액을 환급해주는 소득세액공제제도 (EITC)를 도입하며, 비정규직과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를 국민연금 가입자로 전환하는 것 등도 누가 얼마 만큼의 비용을 부담하느냐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사상누각일 뿐이다. 자영업자 소득파악률을 높이고,고소득층의 보험료 부담을 높이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인수위의 설명이지만 지출은 확정적이고 재원확보는 불투명한 상태에서 세워진 계획이라면 역시 실현가능성을 의심해 볼 수밖에 없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50%를 여성에 할당하는 등 공직분야에 여성 할당제를 도입하며 이를 공기업에까지 확대하자는 방안은 어떻게 나온 것인지 모르겠다. 공기업에 '비용-효율 분석'의 민간경영 기법을 도입하는 것이 시급한 상황에서 기업경영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이같은 사회적 요구를 강제한다면 나중에 경영성과에 대해 책임을 물을 근거도 희박해지게 마련이다. 기간제 근로자가 3년 이상 근무했을 경우 해고를 제한하도록 한다는 발상 역시 취지와는 달리 오히려 비정규직 고용을 불안하게 하는 역효과를 낼 것이 뻔하다. 인수위가 내놓은 사회·문화·여성 분야 대책은 이외에도 허다한 비용요인을 안고 있어 정책으로서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문제는 이상(理想)이 아니라 재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