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모방범죄

9·11테러 이후 세계는 한동안 백색가루 비상에 시달려야 했다. 월드트레이드센터를 폭파한 테러리스트들이 또 다시 미국을 공격할 심산으로 탄저균 포자가 담긴 우편물을 의회와 행정부 등에 무차별적으로 보내자,이를 흉내낸 범죄가 독일 러시아 등지로 확산된 것이다. 소위 '모방범죄(copycat crime)'가 기승을 부린 대표적인 사례였다. 큰 사건이 나면 으레 모방범죄가 따르게 마련인데 일본에서는 지하철 사린 독가스사건이 일어난 뒤 한동안 독가스공포에 떨어야 했다. 국제선의 항공기테러 협박 역시 예외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모방범죄는 이제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닌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라 있다. 현실적이지 않은 가상속의 사건까지도 아무 판단 없이 모방하곤 한다. 컴퓨터 게임에 나오는 수법을 배워 살인을 저지른 사건도 여러 번 있었다. 또 비디오음란물을 보며 예사로 성폭행을 자행하는가 하면 얼마전 조폭영화가 유행하면서는 청소년들 사이에 패싸움이 다반사로 벌어져 부모들의 애를 태우기도 했다. 음식물에 독약을 넣어 협박을 한다든지,사기로 보험금을 타낸다든지,남의 컴퓨터를 해킹하는 것 등도 전형적인 모방범죄에 속한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모방범죄는 발생하고 있으나 사회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을수록 이에 비례해 범죄건수와 형태가 교묘해지는 것 같다. 부조리와 비리가 없는 건강한 사회가 강조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모방범죄는 사회가 불안할 때 빈번해지곤 하는데 개인주의와 배금주의가 가세하면 더욱 흉포화하는 경향을 띠기도 한다. 대구 지하철 방화사건이 터지자 벌써 지하철 폭파전화가 걸려와 경찰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고 한다. 가뜩이나 혼란한 판에 혹시라도 또 다른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까 시민들의 불안은 커지고만 있는 것이다. 모방범죄를 없애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게다. 특히 모방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는 청소년의 인터넷중독은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이 가정과 사회에 대해 애정을 갖도록 하고 폭넓은 문화생활을 즐기도록 배려하는 일이 급선무인 것 같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