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만화로 풍자한 近代 .. '모던 뽀이, 京城(경성)을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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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은 시대상을 반영하게 마련이다.
1920∼3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 신문과 잡지의 주된 장르였던 '만문만화(漫文漫畵)'도 마찬가지였다.
한 장의 만화에 짧은 글을 덧붙인 만문만화는 근대화와 식민지가 공존하던 시대를 풍자하고 고발하던 통로였다.
'모던 뽀이,京城(경성)을 거닐다'(신명직 지음,현실문화연구,1만5천원)는 한국의 첫 만문만화 작가였던 석영(夕影) 안석주(1901∼49년)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1920∼30년대 조선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와 신학문을 통해 서구의 삶을 동경하던 '모던 뽀이'와 '모던 껄'들이 주인공이다.
"겨울이 왓다.
도회의 녀성이 털보가 되는 때다.
여호털,개털,쇠털,털이면 조타고 목에다 두르고 길로 나온다.
구렝이도 털이 잇다면 구렝이 가죽도 목에다 둘럿슬가."
1931년 '가두풍경-털시대'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작품은 똑같은 옷차림과 머리 모양에 똑같은 여우 목도리를 두르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섯명의 '모던 껄' 그림과 함께 이렇게 풍자한다.
값비싼 여우 목도리를 둘러야 '모던 껄' 대열에 낄 수 있는 '거짓 욕망'에 대한 풍자다.
"조선 서울에 안저서 동경행진곡을 부르고,유부녀로서 '기미고히시-'를 부르고 다 쓰러저가는 초가집에서 '몽파리'를 부르는 것이 요사히 '모던 껄'들이다…."
'여성선전시대가 오면'(1930년)이라는 작품은 이렇게 개탄한다.
그림에선 오두막에서 확성기를 틀어놓고 '몽 파리''동경행진곡' 같은 서양 노래와 일본 노래를 밤새 불러댄다.
몸은 경성에 있지만 파리 뉴욕 동경의 최신 유행을 동시에 접하고 추종하길 갈망하기 때문이다.
'만문만화로 보는 근대의 얼굴'이라는 부제대로 책은 소비 중심의 근대도시 경성과 모던 걸·모던 보이의 등장,시대별 유행,새로운 결혼문화와 가족관계의 변화,당대 사람들의 모습과 근대를 바라보는 시선 등을 꼼꼼히 전하고 있다.
예스러운 말투와 낯선 표기법들이 오히려 재미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