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강맑실 <(주)사계절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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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려고 산밑에 있는 아파트 길을 내려간다. 겨우내 얼었던 흙이 숨을 쉬면서 내뿜는 봄 냄새가 제법 싱그럽다. 까만 넥타이를 맨 박새 한 마리가 산벚나무 가지에 앉아 신나게 지저귄다.
맛있는 벌레라도 발견한 걸까.
작년 겨울에 보았던 새 한 마리가 떠오른다.
조류탐사를 떠나는 사람들을 따라 경안습지로 새들을 만나러 갔을 때의 일이다.
청둥오리 흰뺨검둥오리 넓적부리 비오리 등 오리과 새들을 하나하나 구별하는 재미에 푹 빠져, 습지에서 노닐고 있는 오리들을 쌍안경으로 관찰하고 있을 때였다.
한 떼의 새들이 습지 위로 날아들었다.
그런데 그 중 유난히 물위에 닿을 듯 낮게 날던 한 마리가 그만 물 속으로 스르르 빠지는 게 아닌가.
그 순간 놀란 우리들은 입 밖으로 큰소리도 내지 못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숨 숙이며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러나 웬걸, 물에 빠진 자그마한 그 새는 5?는 족히 되는 물길을 두 날개로 힘겹게 헤엄쳐 가까운 모래톱으로 올라갔다.
오리과도 아닌 새가 헤엄을 치다니.우리들에게 경이로움을 안겨준 주인공을 자세히 살펴볼 겨를도 없이, 그 주인공은 모래톱에 오르자마자 동료들과 함께 표표히 날아가 버렸다.
새들 이름은 우리가 흔히 뱁새라고 부르는 붉은머리오목눈이였다.
새들이 다시 떼지어 날아가는 걸 보자 그제서야 생각나는 모습이 있었다.
함께 날아들었던 새들이 동료 한 마리가 물에 빠진 것을 알고, 모두들 나는 걸 멈추고 모래톱에 내려앉아 동료가 헤엄쳐 나오기를 기다리던 모습이었다.
물에 빠진 붉은머리오목눈이는 물위에 떠있던 먹이라도 발견했던 것일까, 아니면 물위에 닿을 듯 낮게 나는 묘기를 동료들에게 뽐내기라도 했던 것일까.
이유야 어쨌건 뜻하지 않게 물에 빠진 붉은머리오목눈이가 힘겹게 헤엄을 쳐 모래톱까지 갈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혹 모래톱에 서서 그를 지켜보고 있던 동료들이 자신에게 보내준 전폭적 믿음에서 나온 건 아니었을까.
직장생활을 한 지 20년이 넘었고 한 직장의 대표를 맡은 지도 10년이 돼간다. 회사사정이 그리 좋지않을 때 경영을 맡은 나로서는 위기를 빨리 넘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경영 초기에 상당히 심했다. 직원들이 하는 일의 성과를 일일이 따져 물었으며 잘못된 점을 가려내 언성을 높여가며 지적하기 일쑤였다.
책을 만드는 전체 프로세스가 더디게 진행될 때는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직원들 앞에서 숨기지 않고 드러내곤 했다. 그러나 직원들의 문제점을 그런 식으로 지적한다고 해서 잘못된 점이 금방 극복되지도 않았으며 나 혼자 조급해하며 발을 동동 구른다고 프로세스가 단축되는 것도 아니었다.
더더구나 4,5년씩 걸리는 대형 기획물들을 진행할 때는 잔소리와 조급증이 오히려 일을 그르칠 뿐이란 걸 알았다.
실제로 함께 일하는 동료이기도 한 직원들을 변화시키는 건 직원들이 하는 일에 대한 믿음과 기다림이었다.
아니,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자신을 향한 믿음이라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직원들 스스로 변해가고 있었다.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그 사람에 대한 주위의 믿음이야말로 그 사람이 실제로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걸 체험하곤 한다.
신을 향한 인간의 믿음은 신의 마음을 움직여 인간에게 은총을 베풀게 한다.
하지만 한 인간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믿음은 그 사람을 믿음의 내용대로 변하게 하는 힘이 된다.
상대방의 몇 마디 말이나 사소한 행동으로도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고, 상대방이 해놓은 어떤 일의 결과로 믿음이 뿌리째 뽑혀나갈 듯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런 순간마저도 상대방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잠시만 기다려보면 그 사람에 대한 믿음이 다시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싱싱하게 자라는 걸 느낄 때가 많다.나 역시 예외일 수 없다.직원들이 나에게 갖는 믿음을 종종 느낀다.
그리고 그 믿음 속에 담긴 소망의 소리를 듣고 있다.
큰 파도처럼 몰아치는 회사의 일들 앞에서 늘 두려움을 느끼고 도망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나약한 나이지만 나를 향한 믿음의 힘으로 그 일들과 정면대결을 벌일 수 있다.
물에 빠진 붉은머리오목눈이가 정말로 자신을 지켜보는 동료들의 믿음 때문에 모래톱까지 헤엄쳐 갈 수 있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자신을 향한 주위 사람들의 믿음을 먹고사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