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에게 경제교육을] 제3부 : (6) 광주 문흥초등학교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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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광주광역시 문흥초등학교 2학년 4반 교실.
3교시 수업종이 울린지 꽤 지났지만 시끌벅적한 소리가 교실 문밖까지 새어 나왔다.
'경제교육 시범학교라도 별 수 없군.'
실망감을 안은 채 들어선 교실엔 일반수업 대신 '알뜰시장'이 서 있었다.
교실 벽면을 따라 뺑 둘러놓은 책상위엔 교과서는 온데간데 없다.
대신 '신나는 인형가게' '학용품 마트' 등 앙증맞은 명패와 인형 책 필통 등 갖가지 물건들이 종류별로 수북이 쌓여 있다.
교실은 "필통은 얼마야?" "싸게 팔아요, 우리 가게로 오세요." "영수증 받아가야지!" 라며 저마다 외쳐대는 아이들의 목소리로 가득하다.
"좀 시끄럽죠? 지금 '가게놀이' 수업을 하고 있는 중이에요. 작년 11월께 한 번 했던 놀이수업인데 아이들이 자꾸만 또 하자고 졸라대서..."(문인화 교사)
수업 진행방식은 대충 이렇다.
일단 아이들이 집에서 보던 책이나 인형 등 쓸만한 것들을 가져오면 선생님이 값을 쳐서 '가짜 돈'으로 바꿔준다.
같은 종류의 물건끼리 묶어 가게를 만든 뒤 반 아이들은 '가게 주인'과 '소비자' 두 패로 나뉘어 가짜 돈으로 물건을 사고 판다.
교실 한 구석 '학용품 마트'에서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규유와 보라가 서로 TV 애니메이션 '올림푸스 가디언' 캐릭터 필통을 갖고 싶어 한 것.
필통은 하나 뿐인데 누구도 포기하려 하지 않자 결국 문 교사가 중재에 나섰다.
답은 '경매'.
2천원짜리 필통값은 1백원, 2백원씩 올라갔다.
규유가 큰 마음먹고 전 재산인 '3천원!'을 불렀다.
하지만 5천원을 가진 보라에겐 당할 수 없다.
3천1백원에 필통은 보라에게 낙찰.
"내가 먼저 찜해 놓은 건데..."라며 얼굴을 붉히는 규유.
수중에 3천원밖에 없는게 이렇게 속상할 수가 없다.
그래도 '물건(공급)은 한정돼 있는데 찾는 사람(수요)이 많아지면 가격이 올라간다'는 법칙 하나는 확실하게 배운 셈.
물건을 살 때는 자기에게 꼭 필요한 것을 예산 범위안에서 골라야 한다는 합리적인 소비 태도를 익힌 것은 물론이다.
문흥초등학교에서 이뤄지는 경제교육은 이처럼 체험 위주다.
사회과 관련 수업때는 '동네시장.백화점.할인점 방문해 물건값 비교.조사하기' '엄마와 함께 장 보고 영수증 모으기'와 같은 현장 학습이 주를 이룬다.
경제와 전혀 상관없는 과목에서도 '품질마크 종류와 내용 살피기(미술)' '폐품 이용해 양팔저울 만들기(과학)' '절약과 관련된 말로 동요가사 바꿔 부르기(음악)' 등 경제교육 커리큘럼을 짜 놓았다.
작년 10월 '문흥 건전 소비체험의 날' 행사때는 경제상식 퀴즈 게임인 '도전 골든벨', 경제 관련 내용을 노랫말로 바꿔 부르는 '도전 가요제', 재활용을 주제로 한 '우리가 꾸미는 공익광고' 등의 이벤트를 마련했다.
문흥초등학교의 경제교육은 학교밖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주변 학용품 가게나 슈퍼마켓 주인들의 변화가 대표적인 사례.
여기엔 이 학교 인터넷 홈페이지(www.munhung.es.kr)의 '소비자 불만편지' 코너가 큰 역할을 했다.
"승리문구 아저씨, 조금만 더 친절하게 대해주시면 안돼요? 다시는 이용을 안하겠다는 친구들이 많아요."(홍민석.4학년2반)
"자전거 총판옆 자판기 관리좀 잘 해 주세요. 얼마전에 코코아를 뽑았는데 작은 개미들이 같이 섞여 나왔어요."(김용환.6학년3반)
소비자 불만편지 코너엔 야무진 어린이 고객들의 지적이 상점 이름과 함께 모두 공개된다.
정당하게 돈을 주고 물건을 사는 만큼 소비자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는 경제 교육의 결과다.
처음엔 주변 상인들로부터 "학교에서 애들 버릇만 버려놓는다"며 반발도 있었지만 차츰 긍정적으로 평가가 바뀌어가고 있다.
학교 정문 맞은편에서 9년째 문구점을 운영중인 색동이문구 주인 김모씨는 "처음엔 당돌하게 대거리하는 아이들이 황당하기도 했고 기분도 상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소비자의 권리를 찾겠다는 아이들이 대견스러워 조금이라도 더 친절해지려고 한다"고 귀띔했다.
문흥초등학교는 지난 2년간 한국소비자보호원의 지원을 받아 소비자 경제교육을 실시해 왔다.
이 학교 류옥렬 연구부장은 "체험 활동 중심의 경제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은 물론 교사와 학부모들의 경제의식이 예전보다 한결 높아졌다"면서도 "연간 6백50만원의 예산 지원으로는 부족한게 너무 많아 욕심껏 경제교육을 시키지 못한게 아쉽다"고 밝혔다.
최옥자 교장은 "경제교육 시범학교는 물론 체험 위주의 경제수업을 하는 학교들이 많아져 가정과 지역사회로 경제교육이 확대돼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이방실 기자 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