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 칭런제와 中華사상

'위안샤오(元宵)와 초콜릿이 맞붙었다.' 위안샤오는 중국에서 위안샤오제(元宵節:정월 대보름) 때 먹는 탕(湯)에 들어가는 새알 모양의 떡. 얼마 전 신화통신 베이징 천바오 차이나데일리 등 중국 주요언론들은 '위안샤오와 초콜릿의 대전' '동·서양 명절의 경쟁' '큐피드와 등불이 사람의 마음을 뜨겁게 했다'며 법석을 떨었다. 연인끼리 초콜릿 등을 주고받는 칭런제(情人節:밸런타인데이)와 위안샤오제가 이틀 연속 이어진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정월 셋째날이 칭런제여서 1주일 연휴가 이어지는 춘제(春節:설) 분위기에 묻혀버렸으나,올해는 춘제가 끝난 이후부터 초콜릿과 장미가 날개돋친 듯 팔리는 등 사뭇 달랐다. 베이징의 왕푸징(王府井) 거리에는 초콜릿을 든 젊은 연인들과 장미를 파는 행상들의 모습이 눈에 자주 띄었다. 베이징 좡성충광 백화점에서는 하루 초콜릿 판매액이 평소 3만위안(1위안은 1백50원)에서 8만∼10만위안으로 뛰었다. 장쑤성의 창저우에선 가장 오랫동안 키스하는 커플에게 1만위안을 주는 행사가 성황리에 치러지기도 했다. 궈위화 칭화대 사회학 교수는 "칭런제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젊은이들이 추구하는 것과 일치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극 낭만 오락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칭런제가 중국의 전통문화를 밀어내고 있다'고 우려하는 시각은 많지 않다. 진롄샨 베이징대 민속학 교수는 "중국의 명절 가운데 한족에서 유래되지 않은 게 많다"며 "그러나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모두 중국화했다"고 말했다. '중화문명은 위대한 포용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의 말에는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中華)사상이 짙게 배어있다. 세계화에 나선 중국에서도 한국처럼 서양 명절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밸런타인데이를 상술이 만든 명절이라며 우려하는 목소리는 크지 않다. 서양문화를 자본주의의 부패한 문화라며 배척하던 중국이 이제는 당당히 이를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진 교수는 "중국인의 생활이 부유해졌다"며 "즐거운 명절이 더 생겼다고 해서 나쁠 이유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