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해냈다] 보령그룹 김승호 회장 (4) 77년7월,회사 삼킨 水魔

1977년 7월8일,'용각산' 이후 '구심' '통옥환' 등의 잇단 히트로 승승장구하던 김승호 회장에게 창사 이래 가장 큰 시련이 닥친다. 그날 '30년만의 최대규모'라는 폭우가 보령제약 안양공장을 강타했다. 안양시와 시흥시 일대에 쏟아진 집중호우는 하룻밤 사이 강우량이 4백20㎜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였다. 74년 준공된 2천4백평 규모의 안양공장은 보령제약의 고속성장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당시 제약업계의 단일 공장으로서는 가장 큰 규모였다. 전 공정에 자동화설비가 들어섰고 종업원을 위한 복지시설도 마련됐다. 안양공장은 75년 6월부터 생산된 위장약 '겔포스'의 판매호조로 연일 풀가동되고 있었다. 그때 수마가 들이닥친 것이다. 폭우로 공장앞을 흐르고 있던 호계천이 범람하면서 미처 손쓸 겨를도 없이 성난 물결이 공장을 덮쳤다. 겔포스 생산라인이 있던 공장 지하층을 완전히 삼켜버렸고 각종 시설과 생산 제품들을 고스란히 덮어버렸다. 값비싼 생산시설과 제품들은 천장까지 휩쓸고 간 흙탕물로 인해 진흙범벅이 됐다. 전 생산라인이 완전히 침수됐고 지하창고에 산적해 있던 약품과 원료,부자재들이 유실되거나 못쓰게 됐다. 수마가 할퀴고 간 자리는 차마 눈뜨고 보기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직접적인 피해액이 5억원,완제품 피해와 그로 인한 영업공백 손실을 감안한 피해액은 12억원 이상이었다. 76년 전년대비 36.6%의 고성장을 이룩하며 의욕과 자신감으로 넘치던 김 회장과 보령 직원들에게 느닷없이 닥친 수해는 엄청난 충격과 실망감을 안겨 줬다. 그러나 그냥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김 회장은 물이 빠져나간 후 곧바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장화를 신었다. 2백여명의 사원들 앞에 서서 "우리는 반드시 재기한다"는 신념을 강조했다. 수해 소식을 듣고 지방 영업소 직원들이 속속 안양공장으로 달려왔다. 김 회장과 전직원은 유난히 더웠던 그 여름에 밤낮도 휴일도 없이 공장복구에 매달렸다. 정부에서도 긴급 융자금 등 적극적인 지원을 해주었다. 약업계와 소비자들이 보여준 협조와 성원도 큰 힘이 됐다. 도매상들은 선금을 주고 약품을 매입했고 소매약국들은 잔고를 완전히 정리해 줬다. 소비자들로부터 조속한 복구를 기원하는 뜻의 격려 전보나 성금이 연일 끊이지 않았다. 이들의 도움과 전직원의 강인한 의지를 밑거름으로 1년이 걸릴 것이라던 복구기간을 8개월이나 단축,4개월만에 복구를 마쳤다. 수해를 당한 그 해에 보령은 22.2%의 성장을 이어갔다. 김 회장은 "수해를 계기로 전 사원이 하나로 똘똘 뭉쳤고 보령제약이 그동안 약업계와 소비자들 사이에 뿌린 씨가 어떤 결실을 맺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며 "잃은 것만큼 얻은 것도 많았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