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권력 눈치보는 증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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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부 출범 이후 권력에 대한 경제계의 눈치보기가 두드러지고 있다.
증권시장도 이런 기류에서 예외는 아니다.
대통령 취임식이 있었던 지난달 25일 한 대형증권사의 '취임사 코멘트 번복' 해프닝이 좋은 예다.
이 증권사 리서치센터 A팀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사에 대해 "대미 갈등을 야기하고 경기부양에 대한 기대감을 배제시켜 증시에 부정적"이라는 논평을 내보냈다.
그의 코멘트가 퍼지자 회사측은 즉각 '당사의 공식 견해'라는 이름의 번복자료를 내보냈다.
이 자료에는 '경제 및 주식시장 전반에 긍정적' '국가신인도 개선' '코리아디스카운트 요인 제거' '컨트리리스크 해소' '주가 레벌업 계기' 등 미사여구가 총동원됐다.
한 시황분석가의 '솔직한' 시각이 회사의 공식견해라는 이름 아래 '정반대'로 둔갑한 셈이다.
A팀장은 경영진으로부터 혼쭐이 났고 이 증권사는 그이후 정부 정책에 대한 논평에 대해 사전검열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 사건 이후 각 증권사 시황분석가들은 말을 아끼고 있다.
그들에게 상속·증여세의 완전포괄주의 등 정부정책에 대한 견해를 취재하면 한결같이 "기업 투명성을 높이고 중장기적으로 자금시장에 긍정적 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답하고 있다.
다른 측면은 없냐고 재차 캐물으면 그제서야 "솔직히 말하면 투자자 불안으로 안전자산선호 현상이 가중될 수 있다.
그러나 내 이름은 절대 쓰면 안된다.
이름이 나가면 앞으로는 얘기 못한다"고 애원반 협박반의 답변을 서슴지 않는다.
증권맨에게 권력에 비판적이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을 필요는 없다.
물론 권력에 협조해야 할 의무도 없다.
증권사 리서치 담당자들의 역할은 투자자에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고 자산운용회사는 투자자의 돈을 맡아 수익을 극대화할 임무가 있다.
그들이 눈치를 봐야 할 곳은 권력이 아니라 투자자의 '돈'이다.
권력에 대한 눈치 때문에 '냉철한' 판단이 왜곡된다면 결국 피해 보는 사람은 투자자다.
권력보다는 투자자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선량한 자산 관리자'의 의무일 것이다.
윤성민 증권부 기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