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 중국인의 주룽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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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사람들은 대체로 정치에 무관심하다.
그러나 중국 전인대(全人大)가 개막되던 날은 그렇지 않아 보였다.
택시에서,취재차 들른 한 중국기업 사무실에서,전자상가TV에서도 주룽지 총리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기자가 만났던 많은 상하이 사람들이 주 총리의 마지막 업무보고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상하이 사람들뿐만 아니다.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주 총리의 은퇴를 아쉬워하고 있다.
그 만큼 주 총리는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지도자였다.
중국경제가 지난 10년 간 성장을 지속해올 수 있었던 것은 주 총리 덕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는 90년대 초 인민은행(중앙은행)장으로 일하면서 인플레를 잡아 경제를 정상궤도로 올려놓는데 성공했다.
이후 그는 부총리-총리직을 수행하면서 경제의 환부를 도려내기 위해 과감히 칼을 들었다.
중앙정부 인력을 3분의1로 줄였고,수천만명의 실업자를 감수하고 국영기업 개혁을 밀어붙이는 뚝심을 보여줬다.
그러나 중국인들이 주 총리를 사랑하는 보다 큰 이유는 '청렴성'에 있다.
그들은 주 총리가 초지일관 벌여온 부패와의 전쟁을 기억하고 있다.
주 총리는 지난 98년 밀수 단속에 나서면서 "핵폭탄과 항공모함 빼놓고는 모두 동원하라.그리고 내 관(棺)도 마련하라"라고 외쳤다.
부패와의 전쟁의 서막이었다.
그가 벌인 부패와의 전쟁은 곧 시들고 마는 '정치 쇼'와는 달랐다.
그는 뿌리가 뽑힐 때까지 부패를 추적했고,일부는 아직도 진행중이다.
수년전 샤먼(廈門) 부패사건 조사 때에는 완전무장한 군을 동원하기도 했다.
이후 계속된 전쟁에서 수많은 중앙고위직 인사들이 철창신세를 지게 했다.
최근에는 부자들의 탈세로 전선을 확대하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고위공직자들의 부정부패 사건이 신문을 장식한다.
많은 중국인들이 그런 공산당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중국인들은 주 총리가 벌인 부패와의 전쟁에서 카타르시스를 얻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주 총리가 은퇴했다.
이제 앞으로 누가 중국인들의 가슴을 채워줄 지 주목된다.
상하이=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