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7일자) 대북 쌀지원 핵해결 이후에나

농림부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올해 쌀 3백만섬을 북한에 무상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농업분야 남북고위급 회담'을 열고 그 결과에 따라 내년 이후에도 2∼3년간 비슷한 규모의 식량지원을 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올해말이면 쌀 재고량이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권장하는 적정수준의 2배인 1천1백90만섬에 달할 전망이고 재고관리 비용만 해마다 수천억원이나 드는 만큼 쌀재고 감축이 시급한 것은 분명하다. 북한이 올해에만 필요한 곡물물량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1백40만?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또다시 심각한 식량부족 사태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을 검토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핵 문제로 인해 한반도 긴장이 어느 때보다 고조돼 있고 그 여파로 경제난도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농림부가 갑자기 북한에 대한 대규모 식량지원 방침을 밝힌 것은 신중하지 못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한 쌀을 북한이 군량미로 전용할지 모른다는 의구심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는 현실을 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된다. 콜린 파월 미국 국무장관이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참석때 10만?의 대북 쌀지원 의사를 밝히면서 전제조건으로 국제기구가 식량 분배과정의 모니터링을 강화하도록 요구할 방침을 밝힌 것만 봐도 그렇다. 설령 쌀재고 조정과 인도적 목적을 위해 대북 식량지원이 불가피하다고 해도 먼저 대북관계를 총괄·조정하는 통일부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 뒤 발표해야 옳다. 그렇지 않고 각 부처가 제각각 중구난방으로 대북지원 계획을 발표한다면 또다시 '퍼주기'식 지원이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크다. 이번에도 통일부는 대북 쌀지원 계획을 일방적으로 통보받았으며 '농업분야 남북 고위급 회담'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 얘기라고 하는데 이같은 혼선은 당장 시정돼야 마땅하다. 또한 대북 식량지원 계획은 향후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도록 유도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제시할 유력한 협상카드중 하나라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대북 쌀지원은 필요하다면 정부당국이 얼마든지 검토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북한핵 사태 등과 관련해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차원에서 시행시기와 방식은 충분한 논의를 거쳐 신중히 결정해야 할 것이다. 대북송금에 대한 특검법이 공포되는 등 대북지원의 투명성에 대한 요구가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는 시점이라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