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유의 기름기에 윤기가 좌르륵 .. '오리요리'

전 세계에서 먹거리에 대한 유행의 변화가 가장 심한 곳이 바로 한국이다. 퓨전이 휘몰고 간 자리를 이탈리안 푸드가 대신하고 프랑스 정찬이 인기몰이를 하는가 싶으면 스시나 돈까스가 고개를 쳐든다. 그때마다 레스토랑들의 희비가 교체되는데 예상치도 않았던 음식이 히트를 치고 장수를 하는 예외의 상황들도 발생 한다. 오리요리도 그 중의 하나다. 오리탕과 전골이 유원지와 국도 변을 중심으로 세력을 넓히더니 차츰 도심으로 진출을 했고 황토오리,뱀오리,유황오리 등 각양각색의 오리요리들이 거리의 간판들을 바꿔놓았다. 몸에 좋다는 매스컴의 보도는 세인들의 눈과 귀를 집중시켰고 오리요리를 찾아 줄을 잇는 진풍경을 자아낸다. 오리는 닭보다 살이 질겨 조리에 신경이 많이 써야한다. 특유의 누린내를 없애는 것도 이만저만 힘든 일이 아니다. 제대로 요리된 오리고기는 육질이 퍽퍽하지 않고 기름기가 적당해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한다. 특별한 개성으로 무장을 하고 손님들의 입맛을 잡아끄는 오리요리의 명가 세 곳을 소개한다. 놀부 유황오리 진흙구이(송파구 잠실 본동 아시아 선수촌 아파트 후문 앞,02-425-5292)=예약을 하지 않으면 이 집의 오리 진흙구이는 먹을 수 없다. 손님이 많은 이유도 있지만 조리 시간이 무려 3시간이나 소요되기 때문이다. 특수 제작된 토기에 오리 한 마리를 통째로 넣고 고온에서 구워 손님상에 내놓는데 간단해 보여도 상당한 노하우가 필요하다. 열이 골고루 퍼지는 용기라고는 하지만 고온에서 오래도록 태우지 않고 구우려면 몇 차례 위치를 바꾸며 뜸을 들여야한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오리의 속은 인삼,당귀,무화과,단호박 등 갖은 재료들로 그득하다. 가금류의 부위 중 진미로 꼽히는 껍질은 바삭거리며 입안을 자극한다. 오랜 시간 토기에서 구워낸 오리는 육질이 유난히 부드러워 마치 치즈케익처럼 입자가 곱다. 뱃속을 채우고 있는 또 하나의 별미는 흑미와 서리태를 넣어 익힌 밥으로 오리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반짝반짝 윤을 낸다. 소금을 살짝 찍어야 제 맛이 나는데 씹을 때마다 이에 쩍쩍 들러붙는다. 오리고기는 겨자 소스와 잘 어울린다. 새콤한 소스에 곁들이는 담백한 오리구이의 맛이 각별해서 쉽게 질리지 않는다. 식사로 국수와 죽이 준비되어 있다. 두 가지 메뉴 모두 자극적이지 않은 은은한 맛이 자랑이다. 우리 전통의 멋을 살린 인테리어며 세심한 서비스가 가족 외식이나 손님 접대에 안성맞춤이다. 조원(여의도 KBS별관 옆 유니온 타워빌딩,02-780-8720)=오리 꼬치구이와 영양오리탕으로 25년째 여의도 샐러리맨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정통일본식 꼬치구이집.오리고기 중 맛있는 부위만을 잘라내 데리야끼 소스를 발라 숯불에서 구운 꼬치는 풀 코스가 10종류,하프 코스는 5종류가 제공된다. 1번 타자는 오리등심.데리야끼 소스와 어울리는 등심은 기름이 적당히 섞인 쫄깃한 맛이 인상적이고 두 번째 오리다리는 지방이 적고 살집이 좋아 등심에 비해 씹는 맛이 여유롭다. 쫄깃거림이 주특기인 껍질구이는 젤라틴처럼 탄력이 좋고 오리 목살은 생각보다 질기지만 입안에서 굴리며 씹다보면 특이한 뒷맛이 남는다. 파릇한 들깻잎을 올려 색상을 돋보이게 한 오리안심구이는 향미가 오래도록 지속된다. 소금으로만 간을 한 근위는 닭 모래집과 모양새가 흡사하지만 맛은 훨씬 고급스럽다. 오리의 매력에 빠져 꼬치를 비워가다 보면 자칫 먹을 타이밍을 놓치기 쉬운 것이 백김치와 김치국이다. 식사 도중 적절히 안배를 해야 오리 특유의 기름기를 이겨낼 수 있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오리 꼬리와 은행은 별미 중의 별미.바삭하게 구워진 꼬리는 고소하다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이고 쌉쌀한 은행은 입안의 잔 맛을 완전히 정리해준다. 식사로는 된장과 들깨가 듬뿍 들어가 국물이 구수한 영양오리탕이 인기다. 금강산(세종문화회관 뒤 도렴빌딩 지하,02-733-1348)=오리 요리의 다양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코스요리 전문점.저녁 시간이 되면 직접 제조한 약술에 오리를 즐기려는 정부종합청사의 공무원들과 인근 샐러리맨들로 가게는 늘 만원이다. 가슴살을 훈연한 `스테이크 훈제`가 가장 먼저 테이블에 오른다. 기름기가 적당히 배어있는 살코기가 쫀득쫀득하게 씹히고 오래도록 지속되는 오리 향이 인상적이다. 다음은 양념을 발라 고온에서 구운 "바베큐".살짝 그을린 껍질을 보며 군침이 고이는 순간 종업원은 잽싼 손놀림으로 뼈를 발라내고 살코기만을 먹기 좋게 올려준다. 직화 방식을 택해서인지 기름기가 거의 없고 입안에 넣으면 살집이 기분 좋게 씹힌다. 보드라운 육질과 곁들이는 시원한 동치미는 필수.잔잔하고 담백한 두 요리를 맛보았다면 이제는 혀가 긴장을 할 차례다. 시뻘건 "오리고추볶음"은 속살을 튀김옷에 버무려 튀긴 후 청경채와 견과류를 넣고 고추기름으로 다시 한번 볶아 낸다. 입안이 얼얼해질 정도로 첫맛이 강하지만 이내 보드라운 육질이 입안에 퍼지며 혀를 진정시키고 촉촉한 견과류는 고소함을 빚어낸다. 마지막은 새콤한 "오리레몬소스". 레몬과 파인애플 그리고 옥수수로 마무리하는 소스가 혀를 간지른다. 식사로는 인삼,대추,마늘을 오리 육수에 넣어 푹 끓인 죽이 나온다. 밑반찬이며 주인의 인심이 후한 편이다. 김유진.맛 칼럼니스트.MBC PD showboo@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