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구 파리특파원의 '명품이야기'] 구치 "향수를 돌려다오"

미국의 종합생활용품 그룹 P&G(프록터&갬블)가 최근 모발 전문업체 웰라에 "65억 유로에 인수하고 싶다"고 제의했다. 제의를 받은 웰라의 대주주인 창업주의 후손 스토이헬은 이 회사 지분 51%를 갖고 있다. 지난해 경쟁업체인 헨켈도 웰라를 인수하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인수 제시 금액이 25억 유로나 더 많고 창업자 후손들이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나 변호사와 미술시장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어 성사될 가능성이 크다. 헤어케어 제품 업계는 P&G가 추진중인 웰라 인수 계획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의 로레알과 독일의 헨켈 및 웰라가 지배하는 세계 모발제품 시장에 거대 미국업체가 뛰어들면 시장 판도를 확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 1위 업체인 로레알로서는 P&G가 상당히 부담스러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웰라의 일반 소비자용 샴푸와 컨디셔닝 소매시장 점유율은 세계 4위다. 그러나 미용실을 대상으로 하는 미용전문업소 시장에서는 로레알에 이어 세계 2위다. 미용업소 시장 규모는 약 1백억 유로로 일반 소비시장의 3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5년째 연평균 5%씩 성장하는 황금시장이다. 게다가 미용전문업소 시장은 마진이 크고 한번 거래를 트면 미용업소가 좀체 거래선을 바꾸지 않아 관리하기도 편하다. 향수업계도 P&G의 웰라 인수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P&G가 웰라를 인수하면 명품 브랜드 구치의 향수도 P&G에 손에 넘어가기 때문이다. 웰라는 90년대 초반 구치가 심각한 경영난에 처했을 때 향수 생산 및 판매 라이센스를 매입했다. 한때 절대절명의 상황에서 세계적 최고급 브랜드로 부활한 구치는 향수 라이센스를 다시 사들이기 위해 웰라측에 여러차례 협상을 요청했으나 묵살됐다. 웰라로서는 자사의 최고급 제품인 구치 향수를 돌려주고 싶을 리가 없다. 구치의 최고경영자인 도미니크 데 솔레와 수석 다자이너 톰포드가 라이센스 매입 가격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제안하며 애걸복걸 했지만 웰라의 대답은 법적으로 라이센스 유효기간이 2023년이니 그때까지 기다리라는 것 뿐이었다. 참다 못한 구치의 대주주 PPR이 웰라의 대주주들에게 찾아가 재협상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재인수 제시 가격에 0을 여러개 더 붙여주면 생각해보겠다"며 사실상 거부했다. 구치가 향수 라이센스 재매입에 이렇게까지 매달리는 이유는 향수가 피혁제품 및 시계와 함께 명품 중에서도 가장 수익이 높은 품목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구치 그룹은 이브 생 로랑을 인수함으로써 프랑스에 화장품 생산시설까지 갖췄으니 직접 구치 향수를 생산하면 시너지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P&G가 웰라를 인수하겠다고 하니 구치로서는 지대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구치측은 "P&G의 웰라 인수가 완전히 끝나려면 6개월은 기다려야 하는 만큼 현재로서는 아무런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P&G가 웰라 인수에 성공하면 구치는 즉시 향수 라이센스 재매입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 구치는 생활이 어려울 때 남의 집에 양자로 보낸 친자식을 되찾고 싶은 생모의 심정이다. 파리=강혜구특파원 bellissim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