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하이닉스 예비판정 이후

미국 상무부가 지난 4월 1일 한국산 D램 반도체 수출품에 대해 상계관세조사 예비판정 결과를 발표하자 말들이 많다. 하이닉스에 대한 57.37%라는 고율의 상계관세 판정이 예사롭지 않고,그런 점에서 미국의 통상공세 신호탄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구조조정에 대한 미국측 시각이 노골적으로 드러남으로써 향후 조선 제지 철강 등으로 마찰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가운데 한 쪽에서는 미국의 '일방주의'라며 오히려 미국이 보조금을 주지 않았느냐는 반론이 대두한다. 최근의 한미관계 등을 거론하며 어떤 정치적 복선이 깔린 것일 수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 또 다른 쪽에서는 하이닉스 매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면 마이크론이 제소를 하지 않았을테고 그랬으면 상계관세조사도 없었을 거라는 '때늦은 후회성 진단'도 한다. 모두 그 나름의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래서 어쩌라는 것이냐'는 물음에는 결코 대답이 될 수 없다. '여유 있는 강자(强者)'라면 모르지만,경기침체에다 이라크전쟁까지 치르고 있어 한마디로 '자기 코가 석자인 강자'에게 '너희는 깨끗하냐'는 식의 항의(?)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다. 미국의 하이닉스 예비판정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향후 동일한 문제에 대한 유럽연합(EU)의 판정에 영향을 미칠 게 뻔하다. 반도체가 아닌 다른 분야에 대한 유사문제 제기에도 물론 마찬가지다. 판정 근거가 잘못됐다면 확실히 설득시켜 예비판정이 철회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고,불가피한 상황적 논리가 있다면 이를 잘 설명하여 부과될 상계관세율이 최소화되도록 해야 한다. 앞으로의 '협상력'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최종판정에서 부정적인 결과가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혹자는 마치 미국이 유엔을 무시하고 이라크전쟁을 벌이듯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이나 국제통화기금(IMF) 규범 따위는 무시하고 통상전쟁을 하자는 것이라고 이번 판정을 풀이하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우리가 기댈 곳은 역시 WTO 분쟁해결기구다. 이것이 한·미 양자간의 문제로만 끝날 일이 아니고 보면 특히 그러하다. 할 일은 또 있다. 도하개발아젠다(DDA)규범분야에서는 농산물과 서비스 분야뿐만 아니라 WTO 보조금 및 상계조치 협정(SCM) 개정도 이슈다. 미국 EU 등은 벌써부터 '간접보조금' '위장보조금' 등 한국을 겨냥한 듯한 새로운 보조금 규제를 제안하고 나섰다. 우리도 당당히 제안할 것이 있다. 하이닉스 예비판정에서 보듯 애매하기 짝이 없는 '특정성 개념'이 그것이다. 상계조치 대상은 먼저 '특정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 기준이 완전히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식이다. 사전(事前)적으로 특정한 기업이나 산업을 대상으로 한 것은 물론이고 사후(事後)적으로 제한된 수의 일정기업이나 산업에 보조금이 지급된 경우도 특정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리 되면 어떤 보조금도 특정성 시비를 피해나가기 어렵다. 사후적으로 제한된 수의 기업에 주어진 경우라도 사전적으로 객관적 기준이 명확하게 설정돼 그 기준에 따라 자동적으로 보조금이 지급됐다면 특정성이 없다고 해석해야 마땅하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구조조정과정에서 기업에 한시적으로 제공되는 보조금에 대해 그 성격을 명확히 규정,협정 개정시 반영할 필요도 있다. 물론 보다 근본적으로 해야 할 일도 있다. 우리가 시장원리에 따른 자율적 판단이라고 하는데도 외국인들이 왜 액면 그대로 믿지 않는지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것이 그것이다. 논설ㆍ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