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법률위반운동 벌일까 .. 李美娜 <서울대 교수·사회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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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시민의식을 높이는 하나의 방편으로 법이나 규칙들을 활용하고 있는 듯하다.
사회지도층들은 시민들에게 선진국의 법이나 규칙들을 요구함으로써 선진시민의식을 가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결국 많은 법이나 규칙들 대부분이 일본 독일 미국과 같은 선진사회의 그것을 모방하고 있다.
이와 같은 발상은 법학개론 첫장에 나오는 첫 원칙과 모순되는 것이다.
법은 '규범 중에 최소한의 기준'을 명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기준은 우리 사회가 감당해내기 어려운 최대한(?)의 수준을 전제하고 있다.
선진사회의 여건 속에서 지킬 수 있는 것들을 준거로 하기 때문이다.
이런 기준을 따르다 보면,'전국민의 범죄인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우리네 규정 중에는 '원칙적으로'지켜야 한다는 조항이 가끔 있다.
원칙을 고수하겠다는 것이 아니라,안지켜도 봐준다는 이야기이다.
'탄력적으로' 운영한다는 조항도 제법 있다.
이 말 역시 규정이 너무 엄격하니 예외를 허용하겠다는 암묵적 표현이다.
이런 식의 허술한 규정 운영은,우리들이 만든 법이나 규칙이 너무 높은 사회를 준거로 하고 있다는 자기 고백일 것이다.
기준이 너무 높아서 기준이 무력화되는 사례는 우리 일상의 한 부분이 되고 있다.
어느 대학의 기숙사생이 자신들의 기숙사 규정에 대해 불만을 표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 학생에 따르면,귀가제한시간인 자정을 2회 이상 넘기거나,방에서 2회 이상 술을 마시면 퇴사명령이 내려진다고 했다.
보통의 대학생들이 지키기 어려운 요구였다.
잘은 모르지만,많은 학생들은 그 규칙을 당당하게 어길 것이며,관리자들도 눈감아 줄 것이다.
어쩌면 그 규정은 기숙사 측에서 문제학생을 퇴사시키는 수단으로 활용할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들었다.
부패방지위원회는 회의나 접대시 저녁 식대는 1인당 3만원을 초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규정을 제정했다.
주차공간이 확보돼 있으면서,회의나 업무상 주요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독립공간이 있는 (서울지역)음식점의 식대는 대개 3만원을 초과한다.
1인당 식대 3만원 규정을 지키기가 어려우니,영수증 처리시 참석인원을 부풀려 보고할 가능성이 많다.
너무 도덕적인 윤리강령 덕분에 비윤리적인 행위가 조장될 수 있는 것이다.
높은 기준 때문에 불행해진 사람도 많다.
친구 아버지가 어느 회사의 사외이사를 하셨다.
IMF 이후 그 회사가 문을 닫자,채권자들은 그 분의 전재산을 차압했다.
금융관련 법률에 따르면,회사가 망하는 경우 자금운용이나 대출과 무관한 임원이라도 무조건 연대책임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분은 노후자금을 자신이 근무하지도 않은 회사의 빚 갚는데 탕진할 위험에 처해 있다.
지키기 어려운 법은 그 구성원들의 수준을 높여주지 못한다.
오히려 아무도 지키지 않아도 되는 무법사회 시민이 양산될 위험이 크다.
강자는 안지켜도 되고,약자는 희생타로 당하는 정글을 만들 수도 있다.
위법자들이 '무전유죄'라며 큰소리치는 '죄의식 없는 사회'가 될 우려가 있다.
정말로 사람들을 준법정신을 갖춘 선진시민으로 변화시키려면,그들이 지킬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법과 규칙의 기준을 낮추어야 한다.
선진국이 아닌 우리 사회의,성자가 아닌 보통사람들이 지킬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이에 덴마크나 스웨덴에서 벌였던 '법률위반운동'을 제안한다.
법률위반운동의 내용은 이렇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키지 않는 법이 있다고 하자.일정조건만 지킨다면,실험지역에서 그 법률을 공공연하게 위반해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실험기간 이후에 성과가 좋다는 판정을 내리면,법률위반을 전국적으로 확대시킨다.
즉 그 법을 폐지하거나 완화시킨다는 것이다.
이렇게 기준이 완화된 법은 역설적으로 엄한 법이 된다.
'노력하면 지킬 수 있는 정도의 법을 만들었으니,절대로 봐줄 수 없다'는 메시지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엄한 기준은 후하게 적용할 수밖에 없다.
후한 기준이라야 엄격하게 적용할 수 있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변하기 시작한다.
잘못한 사람이 잘못을 수긍하고 변화에 동참할 토대가 마련되기 때문이다.
lmn@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