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IMF가 한국에 해야 할 일..金仁哲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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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이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계열회사인 SK글로벌의 분식회계 때문이다.
사외이사들이 SK그룹에 포진하고 있었겠지만,SK가 어이없이 무너져 내리자 이들은 하나같이 '불가항력적인 사건'이라고 치부할 것이다.
분식회계는 우리나라 기업에 거의 관례화돼 있으며,그것도 최태원 회장이 취임하기 전부터 있어왔던 것이라는데,그런 상황이라면 외부에서 들어온 사외이사들도 별 뾰족한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외이사제도가 정착하려면 많은 시간이 흘러야 될 것 같다.
왜냐하면 국제 기준으로 보아서는 분식회계가 잘못된 것이므로 고쳐야 하는데,우리나라의 특수한 기업풍토에서 어느 누구도 그것을 문제 삼다가 왕따 당할 사외이사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관행이 문제다.
일부 교수·전직 고관들은 몇개 기업의 사외이사를 겸직하고 있다.
특히 기업오너와 '코드가 맞는' 사외이사는 회의시간만 맞춰 나가주면 수입이 생긴다.
이것이 바로 한국 엘리트층의 맹점으로서 '연고자본주의(Crony Capitalism)'의 대표적 사례라고 외국학자들은 지적한다.
사람은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각자 교육과 사상에 따라 가치관이 다르며 정치적 감각과 성향도 다르다.
그러나 외국정부와 교섭을 하거나 외국기업과 거래할 때,가치관이 다르고 문화가 다른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감성이나 감정으로 교섭과 거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이성과 지성으로 협상조건을 따지고 손익계산을 맞추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정부에서 일하려면 대통령과 코드가 맞아야 하고,대기업에서 일하려면 기업총수와 코드가 맞아야 한다고 알려져 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냉엄하고 비정한 국제협상과 국제경쟁의 마당에 처음부터 한풀 꺾이고 들어가는 셈이다.
예일대의 토빈 교수와 컬럼비아대 스티글리츠 교수는 지난 10여년간 미운 오리새끼 취급을 받아 왔다.
8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토빈 교수는 70년대초부터 국제투기자본의 횡포를 저지하기 위해 유엔주재 하에 국제자본이동세를 도입할 것을 주장했으나 시장 맹신론자들의 집요한 반대에 부딪쳐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작년 3월 타계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2001년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석학으로,세계은행 수석부총재까지 역임했다.
그런 그가 세계은행과 형제같은 국제통화기금(IMF)의 무용론을 부르짖고 나왔다.
IMF의 잘못된 위기처방과 초고금리가 문제를 악화시켜 개도국 국민들을 불행하게 한다고 비판해 왔던 것이다.
이들은 재정긴축·민영화·시장개방화를 추구하는 소위 워싱턴 컨센서스 주도자들로부터 견제와 공격을 받아왔다.
그러나 IMF도 나름대로 애로사항이 많을 것이다.
제한된 금융재원으로 국제유동성의 만성적 부족을 겪고 있는 나라를 충분히 도와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위기 발생 때 처음부터 금리가 충분히 높지 않으면 정책실패로 이어지게 되며,IMF는 외채개도국에 대해 더 이상 뒷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짧은 기간에 한하여 초고금리 처방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제 IMF와 세계은행은 자세를 조금씩 바꾸고 있다.
향후 위기 가능성을 점검하고 그것을 예방하는 것에 더 관심을 쓰겠다는 것이다.
외환위기의 주원인은 부실기업에 있으므로 부실기업이 되지 않도록 평소에 사외이사들을 훈련시키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IMF와 세계은행이 출연하여 '국제사외이사 훈련원'을 만들어 사외이사에게 정보도 주고,국제적 시각으로 사물을 보며,관련 전문금융기술을 습득시켜 실력 있는 사외이사들을 양성해야 한다.
이것이 성공하면 '국제금융기술훈련원'을 만들어 각 회원국이 금융국제화를 착실하게 이행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견실한 기업활동을 위해 사외이사 역할은 중요하다.
코드가 맞는 사람이라고 해서 자기 사람을 사외이사직에 앉힐 것이 아니라,국제감각과 경험을 가진 전문가를 채용해야 된다고 경고한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 정부가 나서서 세계은행을 상대로 이 문제를 성사시킬 수 있도록 준비기구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 정부의 성의와 열의가 있으면 국제기구와 공동운영하는 '국제금융기술훈련원'을 국내에 만들 수 있을 것이다.
ickim@yurim.skk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