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경제주권의 방어과제 .. 李弼商 <고려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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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서열 3위인 SK그룹이 한 외국펀드의 공격에 휘청거리고 있다.
영국계 투자펀드인 소버린이 1천7백억원을 투입하여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SK㈜의 최대주주가 되자 47조원 자산 규모의 SK그룹 전계열사 경영권에 비상이 걸렸다.
외국 자본이 마음만 먹으면 대기업집단을 언제든지 점령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민의 정부가 택한 외국자본유치 지상주의는,삼성전자 포스코 국민은행 등 주요기업과 금융회사의 지분을 50% 이상 내주었다.
개방경제에서 자본은 국적이 없으며,외국자본의 유치는 기업경영의 투명성과 국가신인도를 높이고 경제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외국자본은 경제가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 한해서 약이 된다.
그렇지 못하면 독이 된다.
이번 SK그룹이 외국자본의 공격에 허점을 드러낸 것은 바로 외국자본이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향후 기업의 경영구조와 시장제도가 올바르게 바뀌지 않으면 증권시장과 기업들은 국부를 넘겨주는 수단으로 전락하고,극단적으로는 주요기업의 경영권과 경제지배권이 외국 자본에 넘어갈 수도 있다.
SK그룹이 외국자본 공격으로 경영권의 위협을 받자,출자총액제한 등 규제제도가 국내기업들을 외국 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에 취약한 상황으로 몰아넣었다는 지적이 있다.
외환위기 이후 외국 자본의 주식매집과 경영권 위협이 본격화되는데도 국내기업들이 규제에 묶여 경영권 방어를 제대로 못하는 것은 명백한 역차별이다.
그러나 재벌기업들이 외국 자본의 공격에 취약한 것은 근본적으로 내부 지배구조의 결함에 있다.
재벌기업은 계열사간 순환출자를 통해 기업집단을 형성하고,재벌총수가 소수지분으로 계열사를 통제하는 선단식 경영체제를 갖고 있다.
이런 구조하에서 분식회계 등 비리가 터지고 개혁의 요구가 거세지자 경영상태가 불안한 틈을 타 외국 자본이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기업의 대주주로 들어서 전계열사의 경영에 간섭하는 것이다.
현행 구조하에서 출자총액제한이나 공정거래법을 완화할 경우 부당한 선단식 경영체제를 확대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실제로 1998년 외국 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에 대응하여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대책으로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재벌 총수의 지분은 줄고 계열사간 순환출자만 느는 현상이 발생하여 결국 99년 같은 제도를 다시 도입했다.
재벌기업들이 지배구조를 고쳐 투명하고 공정한 경영체제를 갖추고,적대적 공격에 대한 대응력을 기를 경우 정부는 출자총액제한제도 등 시장논리에 어긋나는 규제는 과감하게 폐지해야 한다.
또 투자기업에 대한 의결권 행사나 정보공개 등 기업경영에 결정적인 사안에 대해 국내기업들만 규제하는 역차별은 당연히 시정해야 한다.
최근 국내경제가 기업들의 투자부진으로 인해 성장 잠재력이 떨어지고 있다.
개혁은 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그러므로 경우에 따라 개혁의 속도조절은 필요하다.
그러나 속도조절이 개혁회피의 빌미로 이용돼서는 안된다.
분식회계 차단,지배구조 개선 등 기업의 신뢰회복과 비리근절을 위한 개혁은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
반면에 출자총액한도,의결권 제한,계열금융회사 분리 청구 등 재벌기업의 경영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개혁은 유연한 방법이 필요하다.
소버린의 SK그룹 공격은 대규모 투자이익을 얻기 위한 그린메일이나 적대적 경영권 인수를 목적으로 할 가능성이 있다.
단순한 투자라 할지라도 이미 이익이 수백억원 규모에 이른다.
외국 자본은 달걀을 낳아주는 닭까지 잡아먹는 속성이 있다.
이미 외국 자본의 적대적 공격이 시작됐음을 감안할 때 올바른 재벌개혁은 경제주권을 지키기 위한 시급한 과제다.
개혁을 추진함에 있어 우리나라 특성과 현실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맹목적인 주주가치 극대화,소유의 분산 등은 위기에 처한 기업들을 외국자본에 넘기는 일이 될 수 있다.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우리나라식 기업경영체제를 만드는 적극적인 정체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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