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행정수도와 청계천 공약 .. 金鎭愛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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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鎭愛
"개발 공약을 해야 당선된다니까…"
이 말이 항상 들어맞는 지는 모르겠으나 2002년의 두 선거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충청권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이명박 서울시장은 청계천 복원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
물론 당선에는 다른 정치적 변수가 작용했겠으나 '무언가를 해내겠다'는 포지티브 선거 전략은 당선에 유효하다는 현상을 입증한 셈이 됐다.
청계천 복원은 워낙 민주당이 검토를 하다가 여러 문제로 유보했지만,한나라당이 공약으로 채택했고,행정수도는 한나라당이 수년 전 검토했다가 유보했던 사안이고 선거과정 중에 그 실현성 논란이 상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표심 확보에 플러스 효과가 있었다는 분석이다.
두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에 그치지 않을 모양이지만 박수 칠 수도 없다는 데 딜레마가 있다.
생태 복원이 아니라 인공 청계천 조성이고,교통 처리 대안이 없고,상인들의 반대가 크고,주변 고층 개발을 부추긴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시장은 7월 1일 철거를 강행한다고 한다.
이에 더하여 '강북 뉴타운 개발 계획'까지 가세했고,곳곳의 구는 경쟁적으로 뉴타운 지정을 서두르며 개발 민심을 사로잡으려 하고 있다.
행정수도는 워낙 중차대한 일이니 국민투표를 해서 국민적 합의를 이루겠다는 공약은 벌써 잊혀진 듯하다.
청와대에 '신 행정수도 건설기획단'이 만들어졌고,건교부는 신 행정수도 건설특별법을 연내 국회에 발의하겠다고 한다.
행정부만이 아니다.
여권 정치인들이 충청권의 곳곳을 이전 부지로 거론하며 지역 민심을 사려 하고 있고,야권 국회의원들조차 '행정수도 충청권 이전 특별법'을 발의하겠다고 한다.
이쯤 되면 그야말로 '저절로 굴러가는 개발 정치'가 돼버리는 것인가? 실제로 어떻게 전개되고,어떤 문제가 발생하건 일단 민심을 얻고 보자는 정치적 수단이 돼버리는 것인가? 여권 야권 가리지 않고 경쟁적으로 이슈를 선점하려는 움직임을 보면,확실히 정치가 모든 것을 좌우하는가.
2004년 총선이란 그렇게도 중요한가.
물론 개발이란 주요 정치이슈 중 하나다.
정치권이 움직여야 무언가 바뀌는 것도 사실이다.
개발을 무턱대고 반대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본말이 전도되고 비합리적으로 전개되는 것을 보면 우려는 커질 수밖에 없다.
첫째,아무리 속전속결이라 해도 너무 빠르게 밀어붙이면 무리가 생긴다.
청계천 복원 정도의 사업이라면 계획 수립과 주변 정비에만 4년을 들여도 훌륭하고,행정수도 이전이라면 타당성 검토와 전략 짜기에만 5년을 들여도 별 무리가 없다.
도대체 빠르게 시행하지 않으면 당장 우리 경제가 무너지기라도 한단 말인가,부동산 가격 폭등이라도 일어난다는 것인가.
그러니 '선거 대책'이라는 설이 돌고,'실적 쌓기용'이라는 비판이 생기는 것이다.
둘째,실질적인 내용을 논의할 장도 없고,분위기도 조성되지 않는 문제다.
환경복원이라는 이념 때문에 도시를 개조해도 문제고,지역 균형개발이라는 이념 때문에 행정수도를 이전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핵심적인 개발일수록 경제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커 행정구조와 산업구조의 적응력도 보아야 하고,주변개발 교통처리 환경보전 등 정지(整地)작업도 만만찮게 필요하다.
지금처럼 공약이기 때문에 한다는 논리가 우세하고,신중론에 대한 설득 논리가 없어서야 어떻게 의견 수렴이 되겠는가.
셋째,내용을 충분히 검토하고 나서 합의과정을 거쳐야 하는 게 아닌가.
장기적인 전략 과제이기 때문에 국민투표 시민투표를 하면서 범사회적 과제로 안착을 시켜야 하지 않는가.
'당선만 되면 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면,'세우고 부수기'를 반복할 위험이 높다.
'지금 이 때 모든 것을 건다'는 정치인의 도박적 속성이 극심해지는 상황에서,주요 국정·시정 과제가 정치인 의지에 의해 약속되고 추진되고,정치계의 이해타산에 의해 증폭되고,방향이 정해지는 것은 참으로 곤혹스런 일이다.
그 동안 온갖 개발 과제들이 온갖 곤욕을 치른 시행착오들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부디 정치적 결정이 아니라 실리적 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결정 과정부터 점검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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