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대북지원 개혁 연계를..李榮善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원장>

동구권이 시장경제체제로 이행하기 시작한지 10년이 넘었다. 유럽개발은행은 얼마전 이들 국가들이 과연 어느 만큼 시장경제체제로 이행했으며,어느 정도의 경제적 성과를 올리고 있는지 보여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찾아낼 수 있다. 첫째,개혁의 정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좋은 경제적 성과를 보인다. 둘째,개혁의 정도가 비슷하더라도 지역별로 다른 경제적 성과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즉 비록 같은 정도의 개혁 진전도를 보이지만,중부유럽국가들은 발틱연안국가들보다 경제적 성과가 좋으며,또 같이 중간 정도의 개혁 진전도를 보이지만 발칸반도의 국가들은 러시아나 CIS보다 나은 경제적 성과를 보이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개혁의 정도가 높을수록 경제적 성과가 좋으리라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인다. 거시적 안정화정책이나 기업·금융의 구조개혁이 종국적으로는 경제적 성과를 높이는데 목적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필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만일 개혁의 정도가 높을수록 좋은 경제적 성과가 보장되는 것이 사실이라면 왜 많은 국가들이 보다 많이 개혁을 진전시키지 않는가? 둘째,왜 같은 정도의 개혁이 이루어졌어도 어떤 지역의 국가들은 좋은 경제적 성과를 보이는 반면 다른 지역 국가들은 성과가 낮은가? 이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답할 것이다. 즉 같은 정도의 개혁을 이룬 국가라도 이행을 시작하기 전 경제상태,다시 말해 초기조건이 다를 경우 경제적 성과가 다를 것이며,또 이 초기조건이 지역별로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개혁 정도가 같더라도 지역별로 경제적 성과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초기조건은 이행 이전에 지니고 있었던 사회주의적 특성일 것이다. 이행 이전의 사회주의적 특성이 강하면 강할수록 경제적성과는 더딜 뿐만 아니라,개혁에 대한 저항이 심해 개혁 자체가 더딜 수밖에 없다. 여기서 개혁의 성공여부가 더 이상 경제문제가 아니고 정치문제임을 알게 된다. 사회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 옛 사회주의권에서 개혁에 저항하는 세력은 기득권을 가진 정치세력과 관료집단이다. 이 두 세력이 개혁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경제적 성과가 좌우된다. 예컨대 중국은 공산당이 안정적 정치세력을 이루면서 개혁에 대해 진취적인 자세를 취했고,또 관료조직을 통제함으로써 두 세력이 모두 개혁에 긍정적으로 참여해 성공적인 성과를 얻어내고 있다. 이에 비해 강한 정치적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지만 관료들의 기득권을 통제하지 못한 러시아와 CIS국가들은 몹시 낮은 경제적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체제이행국가들의 역사적 경험이 북한의 체제이행에 어떤 시사점을 주고 있는가? 북한의 현 사회·정치적 여건을 초기조건으로 본다면 북한은 김정일 체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한 정치적 저항은 높지 않으나,계획경제체제의 강한 관료주의가 잔존하여 개혁의 추진은 물론 경제적 성과도 크게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욱 문제되는 것은 최근 북한이 선군(先軍)정치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선군정치라 함은 군이 모든 것에 앞선다는 뜻이다. 최근 북한은 '군이 없어지면 나라가 망한다'는 논리로 선군정치를 내세우고 있다. 이는 국방위원회의 김정일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지금의 군 중심 정치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의도로 여겨진다. 여하튼 정치적 안정화는 개혁을 주도할 수 있는 힘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선군정치는 또 다른 기득권 세력이 될 군인집단의 세력을 확대함으로써 관료보다 더 강한 저항세력이 형성될 우려가 있다. 결국 북한에서는 중국식 경제개혁이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 결론에 이르게 된다. 북핵문제를 다룰 다자회담이 곧 시작된다. 북한은 체제보장과 경제지원을 얻기 위해 핵을 내세운 벼랑끝 작전을 고수하고 있다. 물론 평화적 해결책이 모색돼야 한다. 그러나 북한이 얻게 될 경제지원이 북한주민의 경제적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한,북한의 군집단만 살찌게 할 것이고,또 그들의 위기 조성작전은 반복될 것이다.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이 북한경제의 실질적인 개혁을 유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yslee@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