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부시와 체니의 독서..全哲煥 <前 한은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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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哲煥
1935년은 영국이 낳은 세계적 경제학자 케인스가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Interest and Money)'을 펴낸 해다. 그 무렵은 후에 제2차 대전을 일으킨 히틀러 괴벨스 시트라이헤르 등 나치당의 웅변과 인종이론의 대본이었던 로젠베르크와 체임벌린의 저서들이 유럽을 떠들썩하게 했었다.
케인스는 이들을 염두에 두고 '일반이론' 끝쪽에 "권좌에 앉아 있으면서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자칭하는 미치광이들도 실은 수년 전에 보잘 것 없는 학자들이 쓴 책에서 광기를 끌어낸 것"이라며 편향된 책과 사상의 해독(害毒)을 경고했다.
유사한 독서 해독이 21세기 초에 생겼다.
뉴욕타임스 4월5일자(국내 신문에는 14일 전후) M 카쿠타니가 쓴 '미국 정책을 만든 책(How Books Have Shaped U.S. Policy)'은 필자에게 착잡한 심정을 일으켰다.
하나는 세계를 호령하며 두번의 전쟁을 일으킨 부시 미국 대통령, 체니, 럼즈펠드 등이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책을 읽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승리를 위한 전략구상은 물론 전쟁의 잔인성에 대한 인간적 고뇌도 같이 했음직하다.
그러나 그들이 독서는 하되 읽은 책의 내용으로 보아,인간적 고뇌보다는 초패권적 국가주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공격성과 효율성을 높이는데 주력한 것 같다는 점이다.
그들이 읽은 책이 모두 신보수주의적 국가주의를 정당화하고 강화하기 위한 이념과 전략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역설성이 없다면 애초부터 높은 인성과 강한 인간적 유대감의 휴머니즘 정착을 부추길 수는 없는 책인 것이다.
부시가 탐독한 책은 국방정책위원이며 교수인 E 코언의 '최고사령부-군인,정치가 및 전시의 리더십'이다.
핵심 내용은 "전쟁을 장군에게만 맡길 수는 없다.
…민간인 지도자가 부하 군인에게 간섭하고 지시해야 한다.
…군부의 전략적 (종전 혹은 후퇴) 요구 대신 전쟁은 완승할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시가 이 책에서 극우 전쟁신념을 얻었을 것이다.
체니는 전쟁사 연구가 D 핸슨의 '전쟁의 가을-미국이 9·11과 테러에서 배운 것'에서 보수적 호전인식을 정착시켰다고 한다.
"전쟁은 처참하지만 문명화를 위해 필수적이며,악을 부수고 선(善)을 구하는 대의명분을 위해 수행된다면 부당하거나 부도덕한 것만은 아니다.
…적이 남지 않을 때까지 죄의식 없이 길고도 어려운 전쟁에 나서야 한다"는 내용이다.
잔인한 전쟁을 정당화하고 국가주의 신념을 정착시킨 셈이다.
럼즈펠드는 '전쟁의 민간지휘와 응징적 전쟁의 정당성'을 설파한 두 가지 책에서 신보수주의 실현전략을 구체화했다고 한다.
즉 W 맨체스터가 쓴 처칠의 전기 '마지막 사자'와 R 올스테터가 분석한 '진주만-경고와 결정'이 그 예이다.
저자들은 모두 도덕적 상대주의를 철저하게 배격하고,고전과 엘리트 교육을 중시하는 천재주의 사상가들이란다.
따라서 이 책들은 단극의 초강대국인 미국 주도의 국제정치경제, 특히 군사적 패권을 정착시키는데 초석이 되는 이념 전략 전술을 제공한 셈이다.
그래서 필자는 읽은 이들이 모두 세계지도자인데도 전 인류적 공감 형성과 유대감 강화를 통한 사랑과 평화 지향의 이상정치 구현을 거부하는 대신,미국지상의 신보수주의와 전쟁의 정당성을 확신하는 지침서로 탐독했다는 것을 슬퍼한다.
9·11테러 이후 미국 정치가들의 전쟁정서 형성과정에서 보인 생태학적 본성은,어쩌면 인간생태학자 I 아이볼-아이베스펠트의 연구결과인 "인간은 천성적으로 살인자적 공격 소지를 타고 난다.
다만 깨달음과 이성으로 이 충동을 억제한다.
그것이 사랑과 미움이다" 중에서 공격 소지만 표출된 것 같다.
그래서 L 스촌디는 "카인이 세상을 다스리고 있다.
의심이 있다면 세계사를 읽어 보라"고 외쳤던가?
역시 독서는 권장해야 하고 책은 많이 출판해야 하지만,'같은 물이라도 독사가 먹으면 독이 되고,벌이 먹으면 꿀이 된다'는 사실을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권좌에 앉아 있는 정치·경제지도자일수록 책도 골라 읽어야 하고,읽는 이의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인류에 대한 유대의식 강화는 필수적인 것 같다.
chchon2002@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