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유년의 콜라 .. 이향희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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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희
"고모,나 이거 마셔도 돼?"
일곱살 난 조카가 부엌 식탁 위에 누가 남겨둔 콜라 캔을 가리키면서 물어본다.
한참 뒤에 보니 식탁 앞에 앉아서 컵 속에 든 콜라를 젓가락으로 휘저어 탄산가스를 빼더니 홀짝홀짝 맛을 보고 있다.
평상시에는 "콜라는 혀를 꼬집는 것 같아" 하면서 인상을 찌푸리던 아이가 저런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봐서는 누군가 시원하게 콜라를 들이키는 것을 봤지 싶다.
실험실에 있는 아이처럼 의심스러운 눈으로 콜라 잔을 들여다보면서 냄새를 맡아보고 젓가락으로 휘젓고 있는 조카를 보면서 문득 저 아이는 그래도 그 '외계의 맛'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조심스럽게 접촉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한테 첫 번째 콜라의 맛은 1970년도 어느 해의 봄 소풍 때 김밥과 함께 마셨던 그 미지근한 맛이 아니었을까? 그땐 아무도 콜라 한잔에 각설탕 네 개의 과다한 당분이 있다는 것을 분석해 주지도,카페인이란 중독성에 대해 걱정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봄 소풍과 김밥과 그 미지근한 콜라의 맛은 들뜬 아이의 마음 그대로였다.
그래서인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처음 마셨던 콜라의 맛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폭탄주를 처음 마신 것이 기억에 없듯이….
어린아이의 혀에 그 탄산음료란 것은 정말 '혀를 꼬집는 맛'이었을 텐데….1970년대의 그 시절에는 그 맛을 미심쩍게 생각해 본 아이가 없었던 것 같다.
맛을 유린당한 나의 어린 시절이었다.
맛은 문화의 이면이다.
문화를 선택하듯이 맛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야 한다.
며칠 전,저항할 수 없는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한 범죄기사를 접했다.
그 어떤 일보다도 분노할 일이다.
유괴도,살인도 아니기는 하지만 지금도 지구상 어딘가에 우유병에 콜라를 채워주는 부모들이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